벌판에서 하염없이 눈 맞는 고양이
눈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눈이 좋아 눈 위에서 발라당도 하고,
눈밭을 달리며 스스로 눈고양이가 되었던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양이별에서 살고 있을 봉달이라는 고양이입니다.
봉달이에게는 늘 함께 붙어다니던 단짝 친구가 있었습니다.
봉달이가 눈밭을 내달리면 덩달아 내달리던 친구.
"참 오랜만에 뵙죠? 그동안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어요."
덩달이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봉달이가 고양이별로 떠난 뒤,
덩달이는 늘 심심한 날들을 보내왔을 겁니다.
봉달이가 없어서 더더욱.
지난 가을입니다.
덩달이는 예전에 봉달이와 함께 갇힌 적이 있던
철창에 다시 갇히는 신세가 되었더랬습니다.
"좀 천천히 같이 가요!"
아마도 집주인은 김장용 무 배추 씨앗이 자라고 새싹이 트는 텃밭을
녀석이 파헤칠까 염려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무 배추가 다 자라고 그것을 수확해 김장을 할 때까지도
덩달이는 내내 철창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가을 내내 녀석은 철창에 갇혀 지내야 했던 겁니다.
"아고 숨차라!"
처음에는 몇 번 덩달이가 철창에서 나왔나 살펴보기 위해
그 집앞을 찾곤 했는데,
그 때마다 덩달이는 서럽게 나를 보고 울곤 했습니다.
동네가 떠나갈듯 앙아앙거렸습니다.
철창에 갇힌 덩달이를 보는 것이 너무 속상해서
다음부터 나는 아예 그쪽 방향으로 발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뭔 눈이 이리 쏟아진다냐...."
그러다 꽤 많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봉달이와 덩달이 생각이 나서
다시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마당을 살펴보니, 아, 다행히 철창에는 고양이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풀려난 것이었죠.
하지만 덩달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집 주변을 왔다갔다 찾아보았지만,
녀석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눈밭을 걷는 건 봉달이가 한수 위였죠!"
그러다가 옛날에 봉달이와 덩달이가 뛰어놀던 벌판 쪽으로 가보았습니다.
역시 덩달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덩달이를 만나지 못해 발길을 돌리려는 그 순간,
어디선가 냐앙냐앙 하며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논자락 짚가리 뒤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났습니다.
덩달이였습니다.
거의 석달 만의 만남이었습니다.
"눈 내리는 우리 동네 꽤 이쁘죠?"
못본 사이 녀석은 꽤나 꾀죄죄해져 있었습니다.
녀석은 내가 너무나 반가웠는지
그동안에 들었던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엄청나게 큰 소리로
냐아앙 냐아앙 울면서 내게로 달려왔습니다.
나는 녀석이 오래 굶주린 것같아
보자마자 눈밭에다 잔뜩 사료를 부어주었습니다.
그 많은 사료를 녀석은 순식간에 다 먹어치었습니다.
그동안 어지간히 배가 고팠던 모양입니다.
"이제 그만 가고 사료나 더 내놓으라구요?"
배도 채웠으니, 옛날 봉달이 생각도 나고 해서
나는 덩달이와 함께 그 옛날 자주 눈밭을 달리고 사진 찍었던 벌판을 지나
더 먼 논자락까지 돌아다녔습니다.
하늘에서는 잔눈이 떡가루를 흩뿌리듯 내리는데,
아랑곳없이 덩달이는 나를 따라 줄레줄레 좇아옵니다.
한참을 돌아다니자 녀석은 이제 그만 다니고
밥이나 더 내놓으라며 채근을 합니다.
"작년 이맘때가 생각나는군! 눈밭 위를 내달리던..."
오래 전 봉달이가 보여주던 눈밭 위의 발라당을 덤으로 보여주기도 하면서
아니 오히려 더 심한 눈밭의 발라당을 내게 선보이면서...
(덩달이의 눈밭 위에서의 발라당은 다음 포스팅 때 다룰 예정임)
내가 멈춰서서 눈 속의 덩달이 모습을 사진 찍을 때면
어쩐지 녀석의 눈빛은 슬퍼보이기도 했습니다.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눈빛 같기도 했습니다.
덩달이와 한참을 산책하고
나는 녀석의 집앞에 이르러 한번 더 듬뿍 사료를 부어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까지 먹으라고 꽤 많은 사료를...
"저도 철창에 그만 갇혀 있고 싶어요. 이렇게 맘대로 산책도 하고...좋은 공기도 마시고...그러고 싶어요."
그런데 이 녀석 그렇게 밥을 내놓으라더니
한두 입 먹고는 내 뒤를 또 졸졸졸 따라옵니다.
결국 녀석은 내가 근처에 세워둔 차에 올라탈 때까지
가지도 않고 배웅을 합니다.
모르긴 해도 녀석 또한 나를 꽤나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덩달이와 눈길을 함께 걷게 되었습니다.
함께 봉달이를 그리워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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