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토함산 넘어 비단마을이 있다
감포 앞바다에 달 떴다. 천년 고도 경주가 그리운 듯 신라의 달빛이 문무대왕릉을 지나 감은사터를 비추더니 경주 남산의 잠든 석불상을 비춘다. 불국사를 비추고, 포석정을 비춘다. 은은하고 고적한 신라의 달밤이다. 전설 속의 여인이 달빛을 날실 삼아 잘그랑잘그랑 비단이라도 짤 것 같은 그런 밤. 창으로 스미는 훤한 달빛에 영 잠이 오지 않는다. 잠 못 드는 천년 고도에서의 하룻밤을 겨우 보내고, 토함산에서 감포로 이어지는 비단길을 넘는다. 여기서 문무대왕릉 쪽으로 길을 잡아가면 감은사터가 지척이다. 그리고 감은사터 가는 길에 목적지인 비단마을 두산리가 있다.
벼가 웃자란 논에는 초록이 짙고, 매미소리 귀 따가운 고샅길이 마을까지 이어져 있다. 그러니까 이 길이 두산리 사람들에게는 실크로드인 셈이다. 금방이라도 비단을 이고 진 시골 아낙이 저쯤에서 걸어올 것만 같다. 비단은 명주의 다른 이름이며, 명주실로 짠 옷감을 말하기도 한다. 또 명주실은 뽕잎을 먹고 자란 누에가 내는 고치에서 뽑아낸 실을 가리킨다. 예부터 비단은 옷감 중에 최고의 옷감으로 통했으며, 곱고 부드러운 것의 대명사로 불렸다. 흔히 ‘비단결 같다’라는 표현도 바로 고운 명주옷감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런 곱디고운 비단을 짜는 마을이 바로 두산리다. 비단마을. 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비단마을로 불릴까. 마을에서 만난 최혜정 씨에 따르면 마을 전체 30가구 가운데 20가구 넘게 모두 비단을 짠다고 한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으뜸의 비단마을인 셈이다.
마을에 들어서 가장 먼저 만난 풍경도 최혜정 씨 집에서 마당을 오가며 ‘명주날기’ 하는 풍경이다. 명주날기는 한 필의 길이와 새수(새는 날실의 올수를 말하며, 새가 높을수록 고운 비단이 나온다)를 맞추는 과정이다. 마당 이쪽에 있는 걸틀(3개의 말뚝)에 명주실을 걸고 다시 마당 저쪽의 걸틀(4개의 말뚝)을 오가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새수 높은 비단이 나오는 것이다. 명주날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날실뽑기’를 통해 새에 맞게 날실을 뽑아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나무를 쪼개어 만든 날틀에는 10개 이상의 구멍이 뚫려 있어 거기로 실을 뽑아 내면 그것을 가지고 날기를 하는 것이다.
시어머니인 박영기 할머니는 마당 한 켠에서 날실뽑기를 하고, 며느리인 최혜정 씨가 그것을 가지고 걸틀을 오가며 날실을 건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고부지간 명주장이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실뽑기’와 ‘날기’를 하는 참 보기 좋은 풍경이다. 박영기 할머니는 올해로 70여 년째 비단짜기를 해왔다고 한다. 16세 때 시집을 온 뒤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비단짜기를 해 왔다. 지금은 눈이 침침해져 바디에 올을 꿰는 일 같은 것은 힘들지만, 대부분의 과정을 아직도 해내고 있다. “눈이 좀 어둡긴 해도 솜씨가 대단한 분이에요. 내가 한건 아직도 마음에 안들어 합니다. 그렇게 꼼꼼해요.” 며느리 최혜정 씨의 말이다.
최혜정 씨도 어려서부터 비단짜기를 배웠다. 친정에서 어머니로부터 비단짜기를 배워 시집을 온 것이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다니느라 내내 비단짜기에 매달리지는 못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비단짜기에 매달린 것은 시어머니가 나이가 들면서부터이다. 시어머니가 힘에 부쳐 하는 모습을 보며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하여 지금은 모든 과정을 최혜정 씨가 도맡아 할 정도이다. 그는 가장 힘든 과정으로 ‘누에실 뽑기’를 꼽았다. “누에고치를 풀 때가 가장 어려워요. 실을 뽑아서 비단 망글라 하면, 이 누에실을 잘 뽑아야 해요. 이건 먼저 물을 뜨겁게 끓이서루 누에고치를 담그면 인제 실이 이래 풀리요. 그럼 그걸 가지고 귾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돌고지(돌개지)에 감았다가 깡통에다 다시 감아놔요. 그걸 가지고 날기를 하는 거죠.”
그와 시어머니가 내는 비단은 대부분 올이 고운 12새 짜리다. 새수가 높으면 날기나 매기(풀 멕이기)도 어려울뿐더러 짜기도 더 힘들다. 그럼에도 최씨네 집에서는 올이 고운 비단을 고집하고 있다. 두산리에서 비단을 짜는 대부분의 집에서도 그렇듯 최씨네 집에서도 직접 누에를 키운다. 봄누에(4월에 씨가 나옴)는 여름에 고치실을 뽑고, 여름누에(7월에 씨가 나옴)는 가을에 고치실을 뽑는데, 누에 키우는 일도 여간 정성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누에란 녀석은 농약에 약해 조금이라도 농약이 묻은 뽕잎을 먹이면 그 해 누에농사를 망치게 된다. 보통 누에는 넉잠을 자고 고치를 짓는데, 애벌레에서 고치를 지을 때까지는 약 한달 가웃 걸린다.
비단짜기는 바로 이 누에가 만드는 고치에서 실을 뽑는 것으로 시작된다. 물을 끓여 고치가 부풀면 고치에서 실마리를 뽑아 돌고지에 걸고 돌린다. 고치 하나에서 실이 다 풀리면, 다른 고치의 실마리를 뽑아 이어붙인 뒤 다시 돌고지로 실감기를 한다. 이렇게 친친 돌고지에 감은 실은 한번 더 대나무 대롱이나 깡통에 적당량씩 따로따로 감아놓는데, 이것을 ‘실내리기’라 하며, 깡통 하나가 한 타래가 된다. 이어서 날실의 길이와 새수를 맞추는 날실뽑기와 날기를 하고, 이것을 가지고 매기를 한다. ‘매기’는 두산리에서 ‘풀 멕이기’로 불리는데, 이 때 우뭇가사리풀과 같은 접착력이 있는 풀을 베솔에 묻혀 날실에 먹여 실 전체와 이음새를 탱탱하고 매끈하게 한다. 이어 명주올 하나하나를 바디 사이로 끼워넣는 올꿰기를 하며, 마지막으로 이것을 베틀에 올려 짜면 곱디고운 비단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날기를 하는 최혜정 씨 집을 나와 최복출 할머니 댁에 이르니, 때마침 잘그랑잘그랑 비단 짜는 소리가 문밖까지 들려왔다. 할머니는 창호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비단을 짜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냥 보통의 비단도 많이 짜지만, 치자나 감물, 홍화 등 천연염료로 염색을 들인 비단도 많이 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할머니 또한 16세 때부터 비단짜기를 시작해 50년 넘게 비단을 짜 왔다고 한다. 할머니의 주름진 손을 보니, 힘들게 지켜온 비단짜기의 내력이 그 안에 다 담겨 있는 것만 같다. 할머니를 비롯해 비단을 짜는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옷감만을 짜는 것이 아니라 옷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직접 비단옷이나 수의용 옷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손으로 짠 비단옷이 수의용으로 많이 나가는 까닭은 좀이 슬지 않고 곱게 삭기 때문이란다.
현재 두산리에서는 연간 200여 필의 비단을 생산해내고 있다. 보통 한 사람이 한 달에 짤 수 있는 비단은 많아봐야 서너 필 정도. 서너 필이면 수의 한 벌 만들 분량이다. 보통 한 벌의 수의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단은 세 필 반(1필=40자, 12미터) 정도라고 하는데, 비단값이 만만치 않아서 시세대로라면 수의 한 벌에 175만원(1필에 50만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그러나 누에를 키우고, 거기에서 나오는 고치로 실을 뽑아 내리고, 날고, 매고, 짜는 손비단짜기의 오랜 과정과 두산리 사람들의 비단결같은 마음과 정성을 생각하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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