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고양이 눈밭에 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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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고양이 눈밭에 납시다

 

 

마당고양이 덩달이가 사는 집 근처에는

또 한 마리의 마당고양이 삼색이가 산다.

덩달이에게 지대한 관심과 경계를 동시에 보내는 고양이.

미모라면 이 동네에서 내로라하는 고양이.

얼마 전 눈밭에서 덩달이를 만나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있는데,

어디선가 냐앙냐앙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미모의 삼색이었다.

이 녀석 나와 마주친 게 고작 서너 번인데도 용케 나를 알아보고

냐앙냐앙 하며 내게로 다가왔다.

사뿐사뿐 눈밭을 걸어오는 고양이.

선녀 고양이가 따로 없었다.

하얀 설원과 고양이의 하얀 가슴털은 미묘하게 어울렸다.

사뿐사뿐 눈밭을 걸어와서 내 바지자락에 살포시 얼굴을 부비는 고양이.

그때였다.

짚가리 뒤에서 내가 준 사료를 먹던 덩달이가

고개를 들어 삼색이 쪽을 보더니 우엉우엉 울었다.

그건 경계의 목소리였다.

그러자 삼색이 또한 놀란 토끼눈을 해가지고

온몸의 털을 바짝 곤두세웠다.

꼬리털은 잔뜩 부풀어 야구 방망이만해졌다.

급기야 내 발밑에서 부비부비하던 삼색이는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더니 집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덩달이와 삼색이.

가까이 이웃으로 살면서 이렇게 서먹한 까닭을 모르겠다.

게다가 선남선녀 고양이끼리 꽤 잘 어울릴 듯한데 말이다.

눈밭에 내려온 선녀 고양이는

오던 길을 되돌아 가더니 논에 버려진 고장난 경운기 앞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췄다.

일단 도망을 오긴 왔는데,

짚가리 쪽에서 울고 있는 덩달이가 못내 궁금한지

녀석은 길게 고개를 빼고 그쪽을 바라보곤 했다.

보아하니 덩달이는 원체 소심한 편이고,

삼색이는 내숭이 몸에 밴 고양이로 보인다.

오는 봄에는 이 두 녀석이 다정하게 함께 있는 장면을 볼 수 있기를

둘이서 꽃다지 언덕도 거닐고

꽃사과 그늘에서 데이트 하는 장면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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