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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7.07 2호 수박서리 고양이 (27)
2호 수박서리 고양이
‘2호 수박서리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가 수박서리라도 했단 말인가?
사연인즉 이렇다.
이틀 전 역전고양이 ‘저기’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녀석의 왼쪽 뒷다리에 이상한 상표가 붙어 있었다.
저기의 왼쪽 뒷다리에 '2호 수박서리' 상표가 붙어 있다.
저기가 가까이 다가올 때를 기다려 살펴보니
<2호 수박서리>라고 적힌 상표였다.
녀석도 자신의 몸에 뭔가 이상한 것이 붙어 불편하다고 여겼는지
연신 뒷다리를 바르르 털곤 했다.
하지만 상표의 접착성이 너무 좋은 바람에 녀석은 그냥 그렇게
어쩔 수 없이 ‘2호 수박서리’ 고양이가 되었다.
저기 녀석 언제까지 저걸 붙이고 다닐 건지....
녀석이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녀석들이 주로 기거하는 헛간채 앞 텃밭에는 늘 음식쓰레기가 쌓여 있었는데,
자주 먹다버린 수박 껍질이 보이곤 했다.
아마도 ‘저기’는 그곳에서 음식 쓰레기를 뒤져먹다
우연히 수박 상표가 뒷다리에 붙은 것으로 보인다.
뭐 고양이가 스스로 수박에서 상표를 떼어 제 다리에 붙였을 리는 없을 테니까.
"수박서리는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붙은 수박 상표를 저렇게 붙이고 다녔던 거다.
언제까지 녀석이 저러고 다닐지는 알 수 없지만,
몇 번 더 풀에 스치고, 그루밍을 하다보면
곧 떨어지기는 할 것이다.
그러니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망초꽃 배경으로 앉아 있는 '거기'(위)와 고양이숲을 잃고 배회하는 '여기'(아래).
사실 역전고양이 무리는 최근에 생활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내가 ‘고양이숲’이라 이름붙인 두충나무숲이 이 녀석들의 은신처이자 놀이터이며 급식소였는데,
얼마 전 이 숲의 두충나무가 모두 베어졌다.
두충차를 만드는 재료이기도 한 두충나무는 주로 껍질을 벗기거나
여린 잎을 따 차를 만든다.
하필이면 얼마 전 몇 년을 키워온 두충나무의 차 수확시기가 된 것이다.
두충나무로 이뤄진 고양이숲은 이렇게 사라졌다.
역전고양이들에게는 날벼락이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녀석들은 워낙에 이 숲에 의지하는 바가 커서 충격도 더한 모양이었다.
‘여기’는 모조리 베어져 휑한 고양이 숲터를 몇 번이나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역전댁’은 은신처가 사라지자
바로 건너편의 버려진 논의 우거진 풀밭을 은신처로 삼았다.
‘거기’와 ‘요기’는 오솔길에 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절단이 난 고양이숲을 바라보았다.
고양이숲 인근을 헤매는 역전댁.
살다보면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일이 얼마든지 벌어진다.
본디 나쁜 일이란 갑자기 생기는 법이다.
행복할 때는 그 행복이 당연한 것이고 영원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행복한 순간이 깨지고 난 뒤에야
그 당연했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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