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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2.11 삶과 시가 하나인 여행길 2
[His Story]이용한 시인의 삶과 시가 하나인 여행길
연합르페르기사입력 2007-12-28 09:40 최종수정2007-12-28 09:42
사람들이 드나든 곳에는 생채기가 나기 마련이다. 본래의 모습은 파괴되거나 변형되고, 문명이 실어온 손때가 잔뜩 묻게 된다. 이용한 시인은 지난 10여 년간 사람들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곳들을 여행했다. 목적도 방향도 없이 오직 순수함의 고갱이와 만나는 길에서 여행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록빛 선명한 관목이 듬성듬성한 가파른 황토빛 벼랑에 지그재그로 좁은 길이 나 있다. 하얀색 등짐을 가득 실은 말 10여 마리가 휘고 도는 벼랑길을 따라 발걸음을 터벅터벅 힘겹게 옮기며 오른다. 유목민 사내 3명도 말들의 뒤를 따라 걷는다. 벼랑 아래의 황톳길에서는 대나무로 엮은 바구니를 어깨에 둘러맨 여인네가 선명한 빨간색과 노란색 옷을 입은 아이들과 함께 길을 간다. 빨간색 옷을 입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가 힐끗 뒤돌아본다.
티베트 차마고도(茶馬古道) 옌징(鹽井)의 소금계곡에서 벼랑길을 올라가는 '마방'의 행렬이다. 유목민의 발걸음과 숨 가쁜 말의 호흡 소리가 들릴 듯한 이 풍경은 시인이자 여행 칼럼니스트인 이용한(40) 씨의 최근 여행 에세이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넥서스BOOKS)의 표지 사진이다.
"'지오(GEO)'라는 잡지사에서 일할 때 우연히 잡지에 실린 사진 한 장과 만나게 됐습니다. 한때 티베트 동부의 왕국이었던 캄(Kham) 지역의 해발 4천800m 고갯마루의 눈 덮인 벼랑길을 몇몇 유목민이 말을 끌고 가는 인상적인 사진이었죠. 언젠가 그 지역을 꼭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6월 그는 20일 동안 티베트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티베트 마방 행렬의 사진을 보고 꿈을 품은 지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있었다.
그의 여정은 비행기로 라싸(拉薩)까지 곧장 가거나 칭짱철도를 이용하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에서 중띠엔(中甸)까지 645km를 비행기로 날아가 그곳에서부터 육로인 차마고도를 따라가는 힘들고 지루한 일정이었다. 중띠엔과 라싸를 잇는 진장공로를 따라가는 길은 옛 차마고도를 바탕으로 한 현대판 차마도로였던 것이다.
"제 책을 보고 차마고도를 다녀온 분이 '사진을 보고 잔뜩 기대했는데, 아니었다'고 그러더군요. 차마고도는 그런 곳이죠. 지금도 가장 은밀하고 험난한 하늘길로 손꼽히는 것처럼 해발 3천~5천m의 산길을 오르내리는 험난한 곳입니다. 반나절 이상 산길만 이어지기도 하고, 마을도 한참만에야 만날 수 있는 지루한 길이죠."
그는 자신의 여행을 '없는 것을 보러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목적하지 않기에 기대하지도 않고 그래서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의 여행지는 오지일 수밖에 없다. 문명화된 도시나 관광지는 손때가 묻었고, 자유롭지도 않다.
지난해 티베트 여행 이후 선택한 여행지도 몽골의 고비사막이었다. 그곳에는 초원과 사막, 황량함이 있었다. 신기하고 재미난 것들이 도처에 있는 관광 대신 그는 무언가를 볼 수 있는 힘과 눈을 가지고 아무 것도 없는 곳을 여행하는 것이다.
그는 더 많은 자유를 위해 혼자서의 일정을 즐긴다. 욕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카메라를 든 것은 자유롭기 위해서였다. 일행의 거추장스러움이 우연히 발견될지도 모르는 여행지의 행운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티베트 시가체의 한 들판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주민들과 마주쳤습니다. 그들을 따라 구(舊)시가에 들어서자 노랫소리가 들려왔죠. 흥겨운 노랫소리에 이끌려 가보니 한 가정집 마당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창(막걸리)을 마시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죠. 그들과 창을 들이켜며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일행이 있었다면 찾아내지 못할 순간이기도 했죠."
잡지사 기자를 그만둔 1997년부터 10여 년간 그는 국내의 오지에 탐닉했다. 강원도 인제의 마장터, 평창의 첩첩산중인 발왕재 60리 길, 경북 달성의 외딴 두메 마을 등 발길 닿는 대로 길을 따라 다니며 일상의 여행지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만나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조우했다.
"제 고향이 충주호의 수면 아래에 있습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수몰민이죠. 갈 수 있는 고향이 사라져버려 그리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오지마을의 풍경과 서정을 찾아다니는 것은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이죠. 무의식 속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시(詩)에는 떠남, 외로움, 버려진 존재감, 부유 등이 짙게 배여 있다. 그의 삶은 보헤미안적이고, 집시 같고, 유목민적인 것이다. 무의식이 자꾸만 고향을 찾아 떠나라고 하는 것만 같다고 한다.
그래선지 그의 여행은 충동적이다. 오래도록 계획을 세우고 준비한 후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티베트에서도 원래 10일 일정이었지만 더 머물고 싶어 불현듯 10일을 더 연장했다. 신용카드가 통용되지 않는 오지에서 준비한 여비도 없었지만 그렇게 부랑자처럼 머물렀다. 어느 눈이 내리는 밤에 강원도에 쌓인 눈이 보고 싶다며 밤길을 떠나기도 했다.
그는 혁명가 이전의 여행가 체 게바라를 동경한다. 발길이 잘 닿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호흡했던 체 게바라처럼 진정한 여행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는 시를 쓰고, 여행을 하며, 체 게바라를 좋아하는 다른 시인 2명과 함께 술자리에서 '붉은여행가동맹'이라는 동인(同人)을 결성하기도 했다.
"한 잡지사에서 여행지 원고 청탁이 들어온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붉은여행가동맹'이라는 단어를 본 편집장이 '빨갱이 집단이냐?'며 원고를 반려했던 적이 있죠. 체 게바라 식의 여행을 동경할 뿐인데 말이죠.”
시인으로서의 삶이 월급쟁이보다 경제적으로 곤궁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 10년 동안 책을 꾸준히 내 온 것에 대해 "스스로 등을 두드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한다. 여행서는 어쩔 수 없는 생계형 글쓰기였고, 시는 않고 잡문이나 쓴다고 욕도 먹었지만, 그런 시간을 견뎌내고 여행을 하며 길 위에 있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고 한다.
그의 여행과 방랑은 쉬 끝날 것 같지 않다. 벌써 내년에는 몽골의 알타이를 여행 목적지로 계획하고 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모국어의 뿌리가 길어 나온 곳을 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오지를 체 게바라 식으로 돌아보려 한다.
'나에게 인생과 여행과 길과 시는 뒤엉킨 한 몸이고 한 뿌리다. 길 위에서 나는 나무와 바람을 보았고, 구름과 적막, 언덕과 하현에 감개하였다. 때로는 다리가 아팠고, 때로는 마음이 아팠다. 10년간의 풍찬노숙에 나는 곤하고 더러 망가졌지만, 그것은 모든 여행자의 운명이고 비극이다. 어딘가에 내가 만나지 못한 행복한 풍경이 존재하는 한, 나는 또 그것을 만나기 위해 야금야금 길을 먹어 치우는 길의 미식가로 살아 볼 참이다.' (「은밀한 여행」의 머리말 중에서)
글/임동근 기자(dklim@yna.co.kr)ㆍ사진/김주형 기자(kjhpress@yna.co.kr)
(대한민국 여행정보의 중심 연합르페르, Yonhap Rep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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