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알타이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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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지금 알타이로 간다


달이 휘영청한 자정 무렵에 나는 몽골이라는 낯선 행성에 불시착했다. 적막한 밤의 우주에 별들은 저마다의 총총한 스토리를 반짝거리며 알타이로 흘러가고, 더러 별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완만한 등고선 너머로 사라진다. 나는 비행접시의 조타실과도 같은 델리카의 조수석에서 그것을 보았다. 한국에서 온 몹시도 부족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방대한 우주적인 풍경들.

그동안 지독한 여행증후군을 앓았다. 이태전 몽골이라는 낯선 별에 도착해 고비와 홉스골을 두루 여행한 뒤부터 내 머릿속에선 끊임없이 그곳의 하늘과 구름이 떠다녔고, 지평선으로 이어진 조붓한 초원의 길이 애틋하게 구비쳤다. 사막의 게르 캠프에서 밤새 들려오던 낙타 울음소리는 가끔 꿈속까지 파고들어 나를 달뜨게 했다. 그건 마치 낯선 행성이 보내오는 어떤 신호와도 같았다. 나는 그 정체모를 호출 신호를 수첩에 적곤 했다. “그렇게 낙타는 낯선 행성을 떠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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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끝에 방대한 우주적인 풍경들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가는 것이다.

상사병과도 같은 이 증상은 이태가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악화증상을 보였다.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다시 몽골에 가야겠다고. 그렇게 다시 나는 낯선 행성에 착륙했다. 이번에는 우리에게 거의 불가촉 처녀지로 남아 있는 알타이를 밟아볼 생각이다. 알타이라고? 뜬금없이 내가 알타이를 간다고 하자 몽골에 대해 조금이라도 참견하고 싶은 측근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거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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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를 벗어나자 진눈깨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히 나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도 알타이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한국어의 계통이 알타이 어족에 속한다는 지극히 초등적인 상식과 그곳에 알타이 산맥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천상 가보지 않고는 알타이를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그냥---, 가는 것이다.
가는 것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계속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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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휴게소. 사람들은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차를 세우고, 아무렇지도 않게 쉬었다 간다.

푸르공이 아니어서 살짝 아쉬운 우주전함 델리카에 한 보따리 흥분을 싣고 나는 울란바토르를 떠난다. 때는 봄이었고, 봄이 아니기도 했다. 첫날부터 날이 궂어서 가랑비가 흩뿌리더니 고갯마루를 올라갈 때마다 진눈깨비가 휘날렸다.
몽골의 봄 날씨는 하느님도 모른다.
몽골의 봄 날씨는 여자보다도 변덕스럽다.
비가 오다 눈발이 날리고, 느닷없이 황사 폭풍이 불더니 다시 쨍하고 날이 갠다. 이 변화무쌍한 몽골의 하늘이야말로 본적도 없는 태초의 하늘이고, 간 적도 없는 낯선 별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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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얀고비. 초원을 흘러가는 냇물에서 목을 축이는 말무리.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사막.

울란바토르에서 알타이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곧바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가는 방법, 다른 하나는 바얀고비-바얀홍고르-델게르를 거쳐 알타이로 가는 방법(남쪽 루트. 약 1000km)이 그것이다. 남쪽 루트는 바로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하는 알타이행 시외버스(봉고차 크기) 노선이기도 한데, 운전기사가 2교대로 밤낮없이 달려도 3~4일(4만 투그릭)이 걸리는 곳이다.

그러나 나는 둘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이 모두 외면하는 항가이 산맥 북쪽 루트(약 1400km)로 가는 방법이었다. 당연히 이 루트(카라코름-체첼렉-타이아트-울리아스타이-알타이)는 길도 험하고, 결정적으로 남쪽보다 하루가 더 걸리는 코스였다. 편하고 빠른 루트를 놔두고 굳이 나는 불편하고 느린 길을 택한 것이다. 하루쯤 늦게 가면 좀 어떤가. 어차피 여행의 묘미는 길과 길의 행간 속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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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알타이 이정표. 이정표가 없어도 그만인 길.

길안내를 맡은 몽골 국립대학 비지아(37, ‘승리’라는 뜻의 티베트어, 알타이 인근이 고향이다) 교수조차 이 길은 절반밖에 가보지 못한 곳이다. 그는 내게 물어왔다. “왜 하필 이리로 갈 생각을 했습니까?” “그냥 그리로 가고 싶었을 뿐입니다.” 하록 선장보다 열배는 인자하게 생긴 운전수는 야생마처럼 거칠게 델리카를 초원으로 내몰았다. 다행히 그는 아무도 가본 적 없는 북쪽 루트의 터송챙겔 인근이 고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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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산맥 만년설산을 향해 달려가는 양치기.

차는 멀쩡한 도로(포장공사중)를 놔두고, 초원의 샛길을 덜컹덜컹 달려간다. 진눈깨비가 그치고 뿌연 먼지와 황사가 자욱하다. 이따금 드러난 풍경 속으로 언뜻언뜻 사막의 형체가 드러난다.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가까운 사막, 바얀고비다. 모래, 사막, 모래폭풍, 먼지의 길, 갑자기 생각나는 더스트 인 더 윈드. 모래폭풍을 피해 달아나는 가축의 행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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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산맥 만년설산 가는 길에 만난 낙타떼.

몽골에서 길을 달릴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가축의 무리다. 특히 염소와 양떼는 차가 오면 꼭 오는 쪽으로 뛰어드는 습성이 있다. 소떼를 만나면 더욱 난감하다. 이 녀석들은 차가 와도 느긋하게 버티고 서서 아예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때문에 몽골에서는 소를 가리켜 ‘길 위의 교통경찰’이라 부른다.
교통경찰이 비키지 않으니, 차가 비켜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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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본 알타이 산맥의 만년설산.

유목의 행성은 이제야 새싹이 돋는 중이어서 아직은 연갈색 찻빛을 띠고 있다. 이 황량한 풍경은 5월 말이나 6월 초가 되어야 생기있는 초록색으로 탈바꿈한다.
바람의 길, 먼지의 초원.
저녁이 다 되어서야 델리카는 옛 몽골제국의 수도 하라호름에 도착했다. 환상의 터널을 지나 현실의 정거장으로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 길 위에서 받아적은 몽골:: http://gurum.tistory.com/

바람의 여행자: 길 위에서 받아적은 몽골 상세보기
이용한 지음 | 넥서스 펴냄
낯선 행성, 몽골에 떨어진 바람의 여행자! 『바람의 여행자 | 길 위에서 받아 적은 몽골』. 세상의 모든 바람이...몽골에 떨어진 바람의 여행자는 4가지 루트로 낯선 행성을 시작한다. 울란바토르를 기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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