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7: 고비의 마지막 밤
그저 말이 필요 없는 고비의 하늘. 초원의 구름. 흘러다니는 상상력.
저녁 7시가 넘어 차는 에르덴달라이에 도착한다.
고작 네댓 채의 게르가 초원에 들어선
이곳에 오자고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맨 것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밥을 하고 밥을 먹는다.
몽골을 여행하며 이렇게 손수 밥을 해먹고 다니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차피 몽골에서는 쉬운 일이란 없다.
에르덴달라이 초원의 게스트하우스. 화살표를 따라가면 세 채의 게르가 나온다.
쉬운 여행은 몽골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밥을 먹고 나자 곧바로 밤이 찾아왔다.
고비에서의 마지막 밤.
함께 고비를 여행한 일행은 모두 게르 밖으로 나와
고비의 마지막 밤을 구경했다.
에르덴달라이. 초원과 하늘과 지평선을 보며 나는 내 그림자를 찍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의 물결과
툭하면 초원으로 떨어지는 별똥별.
하늘이 펼쳐보이는 초원의 불꽃놀이.
그리고 우리는 초원에서,
지평선 위로 곧바로 뜨는 월출을 보았다.
한 소녀가 초원의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초원의 별똥별은
내가 별똥별의 추억을 새기던 어린시절로 나를 데리고 갔다.
우주적이고 자연적인 세계로 나를 몰입시켰다.
지구에는 아직도 이렇게
별똥별이 수없이 쏟아지는 곳이 있고,
은하의 물결이 다 보이는 곳이 있으며,
달이 지평선에서 솟아오르는 곳이 있구나, 라고
나는 감격했다.
고비의 초원에서 만난 장엄한 지평선 일출. 불타는 하늘.
원초적이고, 본질적이고, 우주적인 풍경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몽골이고, 몽골의 진면목이다.
고비의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몇몇은 게르를 벗어나 초원의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순전히 길을 잃고 헤매다 만난 게르에서 사온
아르히를 마시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까지 고비를 느끼기 위해.
빨랫줄처럼 늘어진 밧줄에 매어놓은 초원의 말.
이따끔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마시는
아르히에서는 원초적인 몽골의 맛이 났다.
약간 비리고 심심하며,
초원의 풀냄새가 가득한 몽골의 맛.
우리는 아무도 없는 초원 한가운데서
신나게 떠들고, 신나게 구경했다.
오로지 별빛만이 가득한 초원의 밤 풍경.
초원에 나뒹구는 동물의 뼈. 고비에는 언제나 뼈의 음악이 굴러다닌다.
이튿날 새벽, 나는 또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지평선의 일출을 내 눈으로 기어이 보고 만 것이다.
초원 전체에 불이 난 듯,
동쪽의 하늘은 한참이나 불타올랐다.
‘불 타는 하늘’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풍경.
한참 불타오르던 지평선 끝에서
이내 싯누런 해가 솟아올랐다.
여기서 그 때의 상황을 표현하기란 불가능하다.
표현이 불가능한 풍경 속으로
해가 뜨면서 초원의 하늘은 본래의 하늘빛깔로 되돌아갔다.
일찍이 이렇게 뜨거운 경험이 있었던가.
초원에서 울란바토르로 향하는 길(위). 비 오는 초원과 하늘의 먹구름(아래).
이제 우리가 탄 차는 고비를 떠나
울란바토르를 향해 간다.
고비에서의 일주일.
일주일 동안의 잊을 수 없는 기억들.
하지만 차는 고비를 떠나기가 싫은 듯
연달아 두 번이나 펑크가 나더니
하늘에선 난데없이 우박이 쏟아지고
소나기가 퍼부었다.
지프 운전사 한 명이 그 옛날의 '뽐뿌질'로 펑크난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있다.
고비로 오는 날에도 소나기를 만났는데,
가는 날에도 똑같이 소나기를 만났다.
그러나 그 때와 달리 이번에는 돌풍과 함께 바람이 차서
여름인데도 날씨는 초겨울과 같았다.
운전사가 우리의 70연대식 펌프기로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 동안,
바깥에 나온 내 몸에선
나도 모르게 아래턱과 윗턱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자락을 넘어가면 이제 울란바토르다.
계속되는 비와 돌풍.
차가 거의 울란바토르 인근까지 와서야
하늘은 잠잠해졌다.
익숙한 초원의 언덕을 넘어서자
울란바토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저녁 7시 30분.
우리는 무사히 울란바토르에 입성했다.
이미 머릿속에선 고비의 날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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