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전 세계의 수도, 하라호름
황량한 벌판이다.
벌판 한가운데 108개의 불탑을 세운 성곽이 뿌연 번뇌 속에 잠겨 있다.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밋밋한 산등성이에 오르자
소박한 어버가 푸른 하닥을 걸고
찬란했던 하라호름의 옛날을 굽어보고 있다.
800년 전 세계의 수도로 불렸던 옛 몽골제국의 수도 하라호름의 에르덴 조 사원. 소르크(불탑) 앞을 지나가는 옛 칭기즈칸의 후예.
적나라하게 조각된 남근석은 정확하게 산자락의 여근곡을 바라본다.
여근곡을 바라보는 남근석.
옛날 성안의 에르덴 조 사원에서 수행하던 승려들이
수행은 않고 자꾸만 산자락의 여근곡을 쳐다보자
왕실에서 이곳에 남근석을 세워 음기를 막았다고 한다.
하라호름의 저녁놀. 모래땅을 건너 시내로 걸어들어가는 소떼들.
저녁이 늦어
옛 수로변(이 농업용 수로로 인해 하라호름에서는 몽골에서 드물게 밀밭을 볼 수가 있다) 호텔에 여장을 푼다.
말이 호텔이지 시설은 낡은 여관이거나 여인숙에 가깝다.
이른 아침 책가방을 맨 한 아이가 에르덴 조 사원 앞 초원을 건너 학교에 가고 있다.
한동안 잠잠하던 바람은 저녁이 되면서 강풍으로 돌변해
엄청난 모래바람을 실어온다.
호텔 로비의 14인치 TV에서는 아까부터 한국의 드라마 <대조영>을 내보내고 있다.
지금의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 거대한 영토를 거느렸던 발해 건국 이야기를
과거 대제국의 수도였던 하라호름에서 본다.
하라호름 성곽을 빙 둘러싼 108불탑.
발해도 몽골도 대제국의 마지막은 쓸쓸했다.
그런 것이다. 모든 위대한 것들의 마지막은 쓸쓸하다.
삐걱이는 낡은 침대에서 추운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서둘러 초원으로 나선다.
저녁 일몰에 잠기기 시작하면서 에르덴 조 사원의 실루엣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모래를 실어오던 강풍은 잦아들어 하늘은 전형적인 몽골의 하늘 빛깔이다.
에르덴 조 사원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게르촌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집안에 들였던 염소와 양떼를 방목하느라 시끄럽다.
말을 타고 양떼를 몰던 양치기 노인은
마을에 나타난 이방인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여근곡이 있는 산에서 내려다본 하라호름의 성곽과 에르덴 조 사원과 황량한 벌판 풍경.
대부분의 유목민은 친절하고 사교적이다.
서로 인사를 건네고 코담배를 나누고 나면 곧바로 형제처럼 대한다.
게르촌의 아이들은 성곽 앞의 너른 초원을 건너 학교에 간다.
멀리서 바라본 황량함은
가까이에 다가갈수록 평화로운 풍경으로 바뀐다.
하라호름 여근곡 산에 음기를 막기 위해 세웠다는 남근석.
닫혀 있는 성곽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성의 북쪽에 에르덴 조 사원이 있고, 오른쪽 왕궁이 있던 자리는 폐허가 되었다.
유라시아를 호령했던 옛 제국의 수도는 이토록 소박했다.
관광철이 아니어서 사원은 굳게 문이 잠겨 있다.
옛 몽골제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수도였던 하라호름에 펼쳐진 초원과 평원.
이것을 보러 한국에서 왔다고 관리소에 이야기하자
관리인은 열쇠를 들고 나와 사원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불상도 불단도 사원의 천장도 전시된 불화와 건물에 그려진 그림까지
티베트 사원에서 보았던 익숙한 모습들이다.
이른 아침 게르촌의 양치기 노인이 양을 몰고 초원으로 나서고 있다.
바로 이곳이 16세기 티베트 라마불교를 받아들여 몽골 최초로 지은
라마불교 사원이다.
당시 성안에는 1천여 명의 승려가 거주할 정도로 사원은 번성했다.
그러나 17세기 청나라 침공시 하라호름의 왕궁과 사원은
완전히 불태워져 폐허가 되고 말았다.
아침 햇살 속에서 봄풀을 뜯어먹고 있는 양떼들.
에르덴 조 사원은 100여 년 뒤 건물이 있던 자리에 새로 복원되었지만,
1930년대 공산정권에 의해 한번 더 파괴되었고,
민주화된 1990년 이후 다시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알려져 있듯 하라호름은 옛 몽골제국의 수도이며 모든 몽골인의 ‘정신의 고향’이다.
본래 이곳은 칭기즈칸이 구축한 전진기지였으나,
권력을 물려받은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 오고타이는
1235년 이곳에 성을 쌓고 궁전을 지어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게르촌에서 만난 양과 염소떼.
성벽은 고작해야 둘레가 1.6km, 높이 4m에 108개의 탑신을 세운 것에 불과했지만,
당시 하라호름은 ‘세계의 수도’라 불릴 만큼 대단한 도시였다.
세계의 수도답게 하라호름에는 기독교 교회는 물론 이슬람 사원까지 들어서 있었으며,
유럽과 아랍의 사람들도 빈번히 머물다 갔다.
하라호름 초원에 우뚝 선 나무 두 그루.
이곳의 영화는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150여 년간 지속되었다.
800년 전 찬란했던 세계의 수도는 이렇게 오늘날 허무한 폐허로 남았다.
누군가는 하라호름에서 그런 폐허를 만나고,
누군가는 역사의 흥망성쇠를 본다.
잘 나오지도 않는 숙소의 TV에서 한국의 드라마 <대조영>을 내보내고 있다.
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의 수도가 이토록 초라한 유적에 불과하다.
그러나 광대한 몽골제국의 화려한 역사는 벌판의 유적이 아니라
모든 몽골인의 가슴에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몽골인은 하라호름에서 외계의 여행자가 느끼는 공허함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들은 환영처럼 보고 있는 것이다.
* 바람의 여행자::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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