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체 게바라, 이현상
_ 안재성 <이현상 평전>(실천문학사)
‘한국의 체 게바라’, ‘빨치산 총사령관’……. 사람들은 이현상(李鉉相, 1905~1953)을 그렇게 부르곤 한다. 그러나 그가 왜 한국의 체 게바라이며, 빨치산 총사령관으로서 그가 어떤 행적을 밟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소설가 안재성은 바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현상의 행적을 차근차근 되밟아 <이현상 평전>(실천문학사)을 세상에 내놓았다.
사실 남북분단이 가져온 반공 이데올로기로 말미암아 이현상은 오랜 세월 동안 ‘빨치산의 수괴’ 혹은 ‘빨갱이’로만 알려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가 식민지 약소민족의 주권을 위해, 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인 일본과 미국의 침략에 저항하여 모든 것을 바쳤다는 것을 역사는 외면해 왔다. 해방 후 그가 이끈 유격대의 규모와 전적, 그리고 그 끈질김은 세계의 민중투쟁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사건이었다.
최후의 빨치산 대장 이현상
이현상은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해인 1905년 충남 금산군 군북면 외부리에서 비교적 부농이었던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중앙고보 재학중이던 1925년부터 박헌영 등과 함께 공산당운동에 적극 가담했으며, 1926년 6․10만세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되어 잡혀가기도 했다. 1927년 휴학 중이던 그는 상하이로 건너가 망명 청년들의 모임 ‘한인청년회’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학교로 돌아와 동맹휴학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1928년 구속되었다. 이후 그는 일제 식민치하에서 총 12년간의 감옥 생활을 했다.
해방 이후 그는 조선공산당 재건에 적극 가담하며, 남로당 간부를 맡아 활동하였으나 미군정에 의해 공산당 활동이 불가능해지면서 박헌영 등과 함께 월북했다. 그리고 1948년 다시 남한으로 내려와 11월부터 지리산을 기점으로 빨치산투쟁을 하기 시작한다. ‘조선 인민유격대 남부군 사령관’으로 빨치산 투쟁을 전개해 오던 그는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낙동강전투에 참여하게 되지만,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다시 입산하고 만다.
이후 빨치산 총사령관으로써 그는 빨치산 투쟁을 전개했으나, 1953년 휴전협정과 함께 북한에서는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출신 인물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단행되었고, 그 또한 빨치산 지도자 자리를 박탈당했다. 이 때가 9월 초였는데, 공교롭게도 그는 9월 중순 지리산에서 의문의 총탄에 맞아 시신으로 발견된다. 당시 그의 나이 48세였다.
_본문 중에서
전설적 혁명가인가, 빨치산의 수괴인가
그는 대원들을 아끼고 솔선수범하는 지도자였으며, 남부군뿐 아니라 빨치산 모든 대원들로부터 지극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일제시대 조국 독립의 일념으로 민족해방을 위해 투쟁하다 지리산에서 최후를 맞이한 빨치산의 지도자 이현상. 사실 남한에서는 그의 빨치산 투쟁 전적만을 두고 그를 ‘빨갱이’ 정도로만 평가절하해 왔다. 그가 젊은 시절을 바친 일제시대의 독립투쟁과 투옥생활은 그의 ‘빨치산’ 전적에 묻혀버린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현상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나뉜다. 한편에서는 일제시대부터 해방 후까지 30년 세월을 민족의 독립과 계급해방을 위해 투쟁한 전설적인 영웅으로 떠받드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 ‘빨치산 수괴’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가 한국 현대사에서 어떤 존재였는가를 말하는 것은 사실 아직도 조심스러운 일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일제 치하에서 그는 모진 고문과 회유, 12년간의 옥살이에도 불구하고 단 한순간도 변절하지 않았으며 해방 후에도 온갖 죽음의 위협 앞에서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현상 평전>에는 최초로 공개되는 이현상 직계가족의 사진과 60여 컷의 화보도 수록하고 있다. 소설가 김성동 선생은 추천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저 라틴아메리카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알아도 조선의 혁명가 이현상은 모른다. 마오쩌둥, 호치민, 티토, 카스트로, 그리고 김일성은 알아도 이현상은 모른다. 게바라를 넣어서 위에 든 반제국주의 혁명가들은 모두 혁명에 성공해서 자신들이 꿈꾸었던 새 세상을 열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름답고 훌륭한 새 세상을 만들고자 30년 동안 밤을 낮 삼아 뛰어다녔던 불요불굴한 우리 조선의 혁명가 이현상은 그 꿈을 펼쳐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도 “우리의 비참한 식민지사와 서러운 분단사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핵심인물 중의 한 사람이 이현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Book &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도권 교육에 똥침을 먹여라 (2) | 2009.04.16 |
---|---|
나는 왜 티베트로 갔을까 (7) | 2009.03.11 |
바람의 여행자 (4) | 2008.11.12 |
이 시대의 풍류-길 위의 시인 (3) | 2008.11.12 |
싱글여성 4인의 개성발칙 도시여행 (2) | 2008.08.29 |
1960년대 저항의 아이콘, 밥 딜런 (7) | 2008.08.13 |
춤추는 몸이 조국이었던 춤꾼 최승희의 사랑과 예술 (6) | 2008.08.01 |
두 남자는 왜 동경으로 갔을까 (3) | 2008.07.26 |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 (4) | 2008.07.24 |
침질질이 따라쟁이 괴물 이야기 (3) | 2008.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