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의 눈장난
둥지 옆으로 내려와 밤새 쌓인 눈을 바라보는 모냥이.
봄을 시샘하듯 올 겨울 마지막 눈이 내린 날 아침,
우리 동네 멋쟁이 길고양이 모냥이는 뭐하고 있을까.
산책을 나갔다 치킨집 골목으로 들어갔더니
녀석이 둥지를 나와 멀거니 눈 온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이게 뭐지? 먹는 건가?" 내가 장난으로 눈을 뭉쳐 한 덩이 던져주자 녀석이 앞발로 슬쩍 건드리더니, 차가운지 얼른 발을 뗀다.
온 김에 먹이를 조금 던져주고
장난기가 발동해 눈을 한 움큼 뭉쳐서 모냥이에게 던져주었다.
이 녀석 커다란 눈덩이를 보더니
이게 뭘까, 궁금해 앞발로 슬쩍 만져본다.
이번에는 냄새를 맡으며, 입을 가까이 대본다.
앗 차거워!
눈덩이를 만진 앞발이 차거운지 얼른 발을 뗀다.
그래도 호기심 만땅인 녀석은
궁금증을 참지 못해 다시 한번 눈덩이를 툭, 건드려본다.
"요것봐라!" 발로 툭툭 건드려본다. "앗 차가워!" 눈과 시려움이 묻은 앞발을 들여다본다.
혹여 먹을 게 아닌지,
조심스레 입을 대보기도 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해 또다시 앞발로 눈덩이를 슬쩍 만져본다.
거의 5분 넘게 눈덩이와 장난을 치더니
먹을 게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시큰둥해진다.
"장난치지 마세요!" 트럭 밑에 들어가 잠시 쉬고 있는 모냥이. 쌓인 눈이 야속하다.
시큰둥해진 녀석은 트럭 밑으로 들어가 잠시 쉬다가
녹기 시작한 눈밭을 조심조심 걸어
어디론가 향한다.
알고보니, 모냥이의 전용 화장실이다.
트럭 밑에서 나온 모냥이가 눈밭을 절벅절벅 걸어가고 있다.
화장실을 다녀온 모냥이는
볕이 좋은 치킨집 문앞으로 자리를 옮겨
해바라기를 한다.
꾸벅꾸벅 졸기도 하면서
따뜻한 햇볕 아래서 무작정 눈이 녹기를 기다린다.
모냥이의 전용화장실(위)과 눈밭을 피해 치킨집으로 향하는 모냥이(아래).
태어난지 4개월.
모냥이의 첫번째 겨울은 이렇게 지나간다.
그리고 또 그렇게 무사히
봄이 왔다 가기를...
모냥이가 볕 좋은 치킨집 문앞에 앉아 눈이 녹기를 기다리고 있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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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효과 2008.03.17 15:30
예쁘게 생긴 그 그 고양이...
아직 4개월밖에 안된 고양이였군요;;;
다 큰 줄 알았는데...
추운 겨울이 지나고 그나마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희망적일까요...?
번식력이 너무 좋은 것도 탈...이라고들 하지만
과거 집도 사람도 자연도 조화롭게 살던 시절엔 길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도
지금처럼 홀대받는 존재는 아니었다고 하던데...
시대가 변하니 길고양이가 유독 힘든 삶을 이어가야 하는 환경이 되었나봅니다.
누군가 좋은 사람이 나타나 저 녀석을 거두어 주기를 바라는 저는,
어쩔 수 없는 집고양이 주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