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꽃구경 나온 ‘낭만 고양이’
봄볕이 좋아 우리 동네 주택가 텃밭에도 산수유가 피었다.
꽃을 보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예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길고양이도 꽃을 보면 ‘예쁘다’는 생각을 할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시라...산수유 꽃향기를 맡으며 지그시 눈까지 감은, 행복한 표정의 깜냥이를.
그렇지 않다면 우리 동네 길고양이 남매
희봉이와 깜냥이는 왜 요즘 부쩍 산수유나무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낼까.
녀석들은 거기서 꽃구경도 하고 놀다가 낮잠도 잔다.
길고양이가 꽃구경을 한다고?
사실이다. 최소한 ‘낭만 고양이’의 대를 잇는 희봉이와 깜냥이는 그렇다.
며칠 전 나는 희봉이가 산수유꽃을 한참이나 구경하더니 급기야
산수유꽃에 코를 갖다대고 꽃냄새를 맡고 있는
믿지 못할 풍경을 보고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을 탓해 왔다.
만일 내가 이 사실을 사실 그대로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웃기고 있네, 라고 할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녀석들은 오늘도 산수유 나무 아래서 신기한듯 꽃구경을 하고 있다.
그건 마치 먹이를 발견했을 때처럼 꽃을 ‘좋아하는’ 눈망울이었다.
산수유에 날아든 벌 구경을 하다가 급기야 한번 잡아보려 앞발을 들어올리는 깜냥이.
이미 나와는 친분이 두터운 녀석들이기에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녀석들은 하던대로 꽃구경도 하고
꽃에 날아드는 벌구경도 하면서 개의치 않고 놀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보았던 희봉이의 꽃향기 맡는 장면을
이번에는 깜냥이가 보란듯이 하고 있었다.
깜냥이는 분명 산수유꽃의 향기로움을 느끼는 듯했다.
처음에는 그저 냄새만 맡더니 나중에는 아예 지그시 눈까지 감고
꽃향기를 음미하는 듯했다.
꽤나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산수유 나무 아래로 꽃구경을 나온 '낭만 고양이' 남매.
내가 헛소리한다고 할까봐 나는 그 장면을 여러 컷에 걸쳐 사진찍었다.
희봉이도 옆에서 꽃구경에 빠져 있다.
뭐가 그리 신기한지 활짝 핀 산수유꽃을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또 높은 가지에 핀 산수유꽃을 한참이나 올려다보기도 한다.
희봉이가 나무 아래서 한참이나 산수유꽃을 올려다보고 있다.
깜냥이는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에게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처음에는 그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구경만 하더니
나중에는 앞발을 들어 벌을 잡으려고 내리쳐보지만,
번번이 헛발질이다.
산수유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희봉이(위). 산수유를 바라보는 희봉이의 눈이 진지하다(아래).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꿀벌은 녀석들에게 신선한 장난감에 다름아니었다.
사실 겨울에 태어난 이 길냥이 남매는
세상에 산수유꽃이 있다는 것도 처음 보았을 것이고,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꿀벌도 처음 만나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하나하나가 이 녀석들에게는 모두 신기할 따름이다.
한참을 산수유 그늘에서 놀다가 녀석들은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윙윙거리는 꿀벌 소리에 눈을 떴다가 다시 엎드려 또 졸다가
일어나 산수유 그늘을 배회하기도 하면서
두어 시간이나 녀석들은 산수유 꽃그늘 아래서 놀았다.
그리고는 얼가리 배추가 한뼘이나 자란 텃밭 고랑을 지나
묘지가 있는 잔디밭으로 올라간다.
묵은 잔디가 폭신폭신하게 매트처럼 깔려 있어
이 녀석들은 곧잘 이곳으로 와 낮잠을 자곤 한다.
봄볕 좋은 언덕으로 '낭만 고양이' 남매 희봉이와 깜냥이가 소풍을 나왔다.
실컷 꽃구경을 해서 그런지 녀석들의 표정도 흡족해 보인다.
덕분에 나도 모처럼 산수유 그늘 아래서
꽃구경 한번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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