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보초 서는 까치 포착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고양이가 새를 공격하거나 잡아먹는 것이지만,
때때로 이런 상식이 상식적이지 않을 때가 있다.
가령 까치가 고양이를 위해 보초를 선다고 말하면,
당신은 분명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므로, 믿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종종 이런 믿지 못할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나는 법이다.
고양이가 구덩이를 뒤지는 동안 까치 두 마리가 보초병처럼 서서 번을 서고 있다. "밖에 별일 없냐?" "현재상황 이상무. 안심하고 먹어라!"
이른 봄, 얼었던 땅이 풀리고 밭고랑의 흙도 푸슬해져서
헐거운 흙 사이로 새싹이 돋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다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포착하고야 말았다.
마을길 옆 밭고랑 한가운데서 까치떼와 고양이가 한데 어울려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까치를 잡아먹으려나보다 생각했다.
아니면 까치떼가 고양이를 쫓아내기 위해 무리지어 공격을 하려는 모양이라 여겼다.
하지만 둘다 예상이 빗나갔다.
까치가 구덩이에서 나오자 고양이가 오래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저 안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밭 한가운데 고랑에는 무슨 구덩이같은 것이 파여 있었는데,
그 안에 까치들이 차례로 들락거리고 있었고,
고양이도 마치 자기 순서를 기다리듯 잠시 주춤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까치가 나오자 고양이는 구덩이 속으로 쏙 들어갔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때 까치는 천적을 피해 도망가야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까치떼는 구덩이에서 폴짝폴짝 날아오르더니 구덩이 바로 옆으로 옮겨 앉았다.
그건 불과 1~2미터도 안되는 거리였다.
"다 먹으면 안돼. 아직 우린 입에도 못댔단 말야! 빨리 나와"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더욱 내 눈을 의심케 한건,
그 중 두어 마리의 까치는 아예 구덩이 가까이 다가와 보초병처럼 서 있었다.
고개를 쭉 빼고 좌우, 사방을 살피는 것이
영락없는 보초였다.
잠시 저러다 말겠지, 하고 지켜보았지만,
고양이가 구덩이에 들어가 있는 동안
까치는 내내 까치발을 선 채로 보초를 섰다.
고양이를 위한 보초병인 셈이었다.
"슬슬 뒷동산에나 올라가 볼까?"
물론 이것이 구덩이에 있는 ‘무언가’를 고양이가 먹는 중이어서
잠시 순서를 기다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모습을 공연히 과장해서 보초를 선다느니 설레발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것이 의심의 여지없이 고양이를 위해 번을 서는 모습으로 비쳤다.
구덩이 속으로 들어간 고양이는 가끔씩 고개를 들어 주변을 기웃거렸으나,
이내 고개를 쳐박고 다시금 무언가를 열심히 뜯어먹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쫓아내려거나 공격하려는 의사는 전혀 없어보였다.
이것도 공생관계라고 봐야 하나.
까치와 고양이가 눈독을 들이던 구덩이 속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생선대가리가 있었다.
고양이와 까치가 무엇 때문에 구덩이를 노리는지 심히 궁금하였으나,
나는 고양이가 구덩이를 빠져나올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렸다.
이윽고 10여 분의 시간이 흘러 녀석이 구덩이를 나왔다.
그러고는 아까부터 구경하고 있던 나를 경계어린 눈빛으로 보더니
뒤늦게 밭고랑을 달려 산비탈로 향했다.
봄 햇살이 쏟아지는 묏등을 지나 녀석은 비탈밭을 천천히 가로질러
결국 풀덤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뒷동산 묏등에 올라 봄 햇살을 쬐고 있는 고양이.
도대체 고양이와 까치가 탐을 내던 것이 무엇인지,
밭고랑에 파헤쳐진 구덩이로 접근해 살펴보니
그곳에는 배추 시래기와 음식 찌꺼기 등이 버려져 있었다.
꽁치인지 고등어인지 모를 생선도 몸통 없이 버려져 있었다.
녀석들이 잔뜩 눈독을 들인 건 바로 저 생선 대가리였던 것이다.
까치와 고양이가 저것을 사이좋게 나눠먹은 것이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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