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야간집회 목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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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야간집회 목격담



 

종종 길고양이 야간집회를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일본의 한 사진작가는 수십여 마리의 길고양이가 야간집회를 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 이런 장면을 포착한 사진은 본 적이 없다.
사실 길고양이 야간집회를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눈으로 봤다는 것을 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개울냥이네 영역에 들러 여울이와 노을이 사진을 몇 컷 찍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동안 여러 번 마주쳤던 분이고, 지난 가을에는 ‘길고양이와 할아버지’란 제목으로 블로그에도 한번 소개가 되었던 분이었다.
“그 괭이 사진은 뭐 하러 그래 자꾸 찍어요?”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어 ‘고양이책’을 내려 한다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염치 불구하고 할아버지께 질문을 드렸다.
“이 마을에 고양이가 좀 있나요?”
질문을 던지고 나니 참 어리석은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이 마을에서 내가 만난 고양이만 해도 개울냥이, 축사냥이, 까뮈네, 봉달이, 덩달이를 포함해 무려 20여 마리나 되었다.
“그럼요. 괭이 많죠. 저 정미소 쪽에도 있고, 이 아래도 있고...”
그 때 또 한분의 할아버지가 길을 지나다 말고 말을 보탰다.
“우리 집에도 가끔 쌀가마 쌓아놓은 창고에 괭이가 들어오드라구...”
갑자기 두 어르신의 고양이 대화가 시작되었다.
“하이구 괭이가 밭에다 똥을 얼마나 싼다구...집에도 막 들어오구...”
“그래도 그게 다 거름 되는 거여. 우리 창고에도 괭이가 오니까 쥐가 없드라구.”
“그래도 밤에는 괭이들 때문에 얼마나 시끄러운데...”
“괭이 때문에 쥐새끼 없는 것만 해도 그게 어디여.”
두 분 다 고양이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무조건 미워하지도 않는 그런 분들이었다.
다만 고양이에 대한 관점이 다를 뿐이었다.
두 분 할아버지는 공연히 나 때문에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밤에는 고양이가 더 많다니까. 저번에 보니까 한 30마리는 될 거여. 저 우에 전봇대 밑에 떼루다 죽 모여 있는 거여. 한밤중에.”
말로만 듣던 길고양이 야간집회 장면인 듯했다.
귀가 솔깃했다.
“그렇게나 많이요?”
“그럼, 진짜 20마리는 넘을 거여.”
만일 이것이 길고양이 야간집회였다면, 이 동네 고양이가 얼추 다 모인 셈이다.
내가 꼭 한번 보고 싶은 장면이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목격이 부럽기까지 했다.
도대체 길고양이 야간집회를 목격했다는 사람은 많은데,
이들이 왜 모이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날짜를 정해놓고 모이는 것인지,
무슨 목적을 가지고 모이는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그렇게 모이게 된 것인지,
길고양이 야간집회라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미스터리로 남을 게 분명하다.
혹자는 그것이 길고양이 친목모임이라고 추정하기도 하고
영역 배분이나 어떤 안건을 토의하기 위해 모인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역시 이럴 땐 오이겐 스카사 바이스의 고양이에 대한 명언이 딱 어울린다.
“고양이는 인간에게 수수께끼로 남기로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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