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야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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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야식집

 

달타냥이나 깜직이를 아르바이트 고양이로 고용해서

밤거리를 헤매는 온 동네 길고양이에게 전단지라도 돌리고 싶었다.

전단지의 내용은 간단하다.

<배고픈 고양이 환영. 사료 무한 제공.>

하지만 달타냥이나 깜찍이도 일정이 있고 공사가 다망해서

번번이 고용에 실패했다.

 

요즘 가장 자주 우리집 급식소를 찾는 단골 손님 어미 삼색이와 아기 턱시도.

 

과거 우리집을 찾아오는 길고양이 바람이가 1년 전 고양이별로 떠난 뒤,

한동안 우리집은 무주공산, 파리만 날리는 급식소로 전락했다.

아무리 간판을 새로 내걸고

어여쁜 루와 체를 얼굴 마담으로 내세워 호객을 해도

손님의 발길은 뚝 끊어져 폐업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이대로 문을 닫을 수는 없었다.

나는 한 마리의 손님이라도 불러들이기 위해

곱빼기로 꾹꾹 눌러담은 사료그릇을 마당에 내놓곤 했다.

 

얼마 전 겨울 눈이 왔을 때의 삼색이 엄미와 아기 턱시도.

 

처음 한두 달은 그것마저 나가지 않아서 도로 회수하기를 밥먹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사료그릇이 비워지기 시작했다.

그 녀석은 주로 한밤중에 몰래 다녀갔다.

여름이었고, 밤공기는 시원했다.

그 녀석의 정체가 밝혀진 건 어느 달밤이었다.

한밤중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후다닥 하고 고양이 한 마리가 달아났다.

깜찍이였다.

당시 달타냥네 헛간에서 몸을 푼 깜찍이는 다섯 마리 아기고양이를 낳아 육묘중이었는데,

용케 녀석은 산묘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급식소를 찾아낸 것이었다.

 

원래 삼색이 어미는 겨울 초입만 해도 새끼 노랑이를 함께 데리고 다녔으나, 아기 노랑이는 혹한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혼자서 우리집을 다녀가던 녀석이

어느 날부턴가는 다섯 마리 아기고양이를 끌고 나타났다.

한번은 우리집으로 오는 깜찍이네 식구들을 마을회관 앞에서 마주친 적도 있다.

그렇게 깜찍이네 가족은 밤마다 우리집으로 먹이원정을 왔다.

하지만 가을이 오고 깜찍이네 아기고양이들이 저마다 독립을 해 분가하면서

우리집엔 깜찍이와 새끼 중에 유일하게 고등어 녀석만이 우리집을 찾았다.

지금도 깜찍이와 고등어 녀석은 우리집을 찾는 단골 손님 목록에 들어 있다.

우리집 급식소에 더 많은 고양이가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겨울이 시작되면서이다.

첫눈이 내린 아침에 밖으로 나가보니

우리집으로 향한 고양이 발자국이 잔뜩 찍혀 있었다.

 

어미 삼색이와 아기 턱시도의 아비로 추정되는 성묘 턱시도. 종종 삼색이네 가족과 함께 있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위에서 내려온 놈,

밑에서 올라온 놈,

옆에서 건너온 놈.

족히 대여섯 마리는 돼 보였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삼색이(어미) 한 마리가 두 마리의 아기고양이(턱시도와 노랑이)를 데리고

눈밭을 총총총 걸어 우리집 마당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다.

다음 날에는 덩치가 큰 또 한 마리의 성묘 턱시도가 테라스에서 내려가는 모습도 보았다.

아침 무렵에는 또다른 성묘 턱시도(쾌걸 조로처럼 생긴)가 내 발자국을 듣고 도망을 쳤다.

그 무렵 파란대문집 달타냥도 즈이 집을 놔두고 깜찍이와 함께 우리집을 찾기 시작했다.

갑자기 우리집은 깜찍이와 달타냥, 새끼 고등어, 삼색이와 아기고양이 두 마리, 성묘 턱시도 두 마리.

모두 여덟 마리의 고양이가 우리집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쾌걸 조로를 닮아 내가 '조로'라고 부르는 또 한 마리의 성묘 턱시도. 요즘 부쩍 우리집 출입이 잦아졌다.

 

그러나 대부분 이 녀석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중에 다녀가곤 했다.

그러니까 우리집은 <길고양이 야식집>이 돼버린 셈이었다.

낮에는 파리만 날리고 밤에는 손님이 넘쳐나는 길고양이 야식집.

찾아오는 고양이의 수가 늘어나면서 야식용 사료는 내놓기가 무섭게 동이 났다.

저녁에 커다란 프라이팬 가득하게 사료를 내놓아도

아침이면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일주일도 안돼 이 녀석들은 대용량 사료 한 포대를 가볍게 먹어치웠다.

얼마 전부터 우리집을 찾는 녀석들은 하나 둘 밤이 아닌

낮에도 찾아오기 시작했다.

밤중에만 너무 붐비니까 시간대를 달리해 낮에도 찾는 모양이었다.

 

바람이가 떠나고 난 뒤, 가장 오랜 동안 길고양이 야식집의 단골 손님으로 남은 깜찍이와 이제는 집을 놔두고 우리집에서 삼시 세 끼를 해결하는 달타냥.

 

다행히 우리집을 찾는 고양이들은 무사히 겨울을 난듯 보이는데,

삼색이가 데려오던 아기노랑이만 무지개다리를 건넌 듯하다.

그리하여 요즘 우리집엔 일곱 마리의 고양이가 단골로 찾아온다.

가만 보니 그룹별로 서로 먹이다툼을 피하기 위해 방문 시간대도 달리 하는 것같다.

그 중에는 깜찍이네 고등어 녀석처럼 한밤중에만 찾아와

사진을 한번도 찍지 못한 녀석도 있다.

혹시 아직도 <길고양이 야식집>을 모르는 고양이가 있다면 전해주기 바란다.

<배고픈 고양이 환영. 사료 무한 제공.>이라고.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 트위터:: @dal_lee

명랑하라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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