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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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참호




축사고양이가 살던 축사는 완전히 절거되었다.
축사 한가운데 축사 쓰레기와 동물의 사체를 태우고 묻은 구덩이가 패여 있다.
그 구덩이는 철판으로 덮어놓았다.
충격적이게도 여전히 폐축사를 떠나지 않고
폐축사에 남은 여리는 이 참호같은 구덩이를
은신처이자 임시거처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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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사료배달 소리가...슬슬 나가볼까나.

요 며칠 사료배달을 갈 때마다 참호 속에서 나오는 여리를
만나곤 했다.
참 안쓰러운 광경이었다.
불 태운 쓰레기를 땅에 묻었다고는 하나
그 구덩이가 안전할 리는 없다.
물론 여리가 머무는 이 참호는 말 그대로 갈곳이 없어 머무는 임시거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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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더워...찜질방이 따로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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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축사 주변에 덤프트럭으로 잔뜩 흙을 날라다 쌓아놓은 것을 보면
조만간 이곳에 흙을 덮어 ‘밭’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많다.
그 때까지 여리는 이곳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축사가 철거되고 나서 폐축사에는 오직 여리만이 홀로 남았다.
축사에서 논배미를 하나 건너
돌담집에 가만이가 둥지를 틀었으니,
여리가 외롭지는 않을 것이지만,
축사에 북적거리던 고양이 대가족의 추억이 문득문득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건 내가 느끼는 그리움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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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고샅 그늘에서 쉬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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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료배달을 나가면
가만이는 돌담집에서, 여리는 폐축사 참호에서 나와
중간지점인 논두렁으로 달려온다.
논두렁에 고양이밥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나다.
축사가 철거되면서 밥줄 장소가 마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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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왜 이케 더운 거죠?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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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는 논두렁에서 밥을 먹고 나면
잠시 가만이와 어울려 놀거나 쉬다가
혼자서 논두렁을 걸어 폐축사로 돌아온다.
녀석이 쉬거나 잠시 낮잠을 잘 때면
어김없이 폐축사 옆 고샅에서 시간을 보낸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요즘같은 여름 날씨에
그곳은 시원한 쉼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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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가겠죠. 모든 건 변하겠죠.

햇볕을 막아주는 나무 그늘이 있고, 바람이 있고
언제라도 위험상황이 닥치면 폐축사 참호 속으로 뛰어갈 수도 있다.
한낮에 참호 속은 찜통과도 같다.
참호를 덮은 철판은 마치 불에 달군 것처럼 뜨겁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여리지만,
폐축사에는 이제 달리 은신할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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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에서 밥 먹는 고양이가 있다면, 그게 나에요.

지난 늦가을에 아기고양이로 처음 만난 여리는
어느 새 중고양이가 되었다.
태어난 지도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여리는 작고 가냘프고 여리여리하다.
녀석은 고샅의 그늘에서 한여름의 후덥지근하고 지루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누워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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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이 어둡고 습한, 냄새 나는 참호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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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족이 어울려 북적거리던 시절은 갔다.
시간은 흘러가고,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다.
언제까지 행복하지도 않을 것이며,
언제까지 불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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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곰돌이 2010.06.18 09:48 address edit & del reply

    여리는 미묘이군요. 여리는 소녀냥인가요? 크기는 제가 밥주는 아이들과 같아 보여요. 흠.. 아.. 좋은 집을 찾아야 할 텐데요. 걱정이네요. 동물사체를 태우는 구덩이 철판 아래에서 산다니요. 아... 슬퍼요.

  3. 귀여운 냥이 2010.06.18 10:10 address edit & del reply

    북적거리던 가족도 없이 홀로 외로이, 저렇게 열악한 데 사는 여리 표정이 너무 슬퍼 보여요.ㅠㅠ
    언제쯤 상황이 좋이질런지요..

  4. 오기 2010.06.18 10:57 address edit & del reply

    딱해라...어쩔 수 없는 일이라기엔 가슴 아프네요
    고양이 임대아파트 같은거 있었음....

  5. 미유맘 2010.06.18 10:59 address edit & del reply

    여리 화이팅^^ 맘마 열심히 챙겨먹고, 가만이하고도 잘지내렴^^

  6. 감자네 2010.06.18 11:18 address edit & del reply

    4번째 사진에서 가슴이 짠~~하네요.

  7. 고양이 2010.06.18 11:31 address edit & del reply

    여리 정말 예쁘게 생긴 아가씨입니다.
    누군가 입양하시면 좋을 듯한데요...
    저렇게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고양이... 흔치 않습니다.

  8. 미니 2010.06.18 13:38 address edit & del reply

    어이구~ 이 아가씨를 어쩌면 좋습니까..
    부들처럼 연약해뵈는 모습에 너무 안타깝네요.
    그나마 달리님 덕분에 먹고는 삽니다만 어디 영역을 옮길 때가 없을까요..?

  9. 느린 2010.06.18 13:41 address edit & del reply

    언제까지 불행하지도 않을것이다에
    많은것을 걸면 안되는거라고 알고 있지만
    그래도 바래봅니다

    정말이지 여리여리한 예쁜 여리 좋은 보금자리를 찾기를 ..

  10. Favicon of https://soopia.tistory.com BlogIcon 바니♡ 2010.06.18 13:4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름에 맞게 참 여리여리한 여리에요
    지난 겨울 축사 대각족 고양이들 환경은 그렇지만 너무 정겹게 느껴졌는데요
    그 대가족들이 뿔뿔히 흩어져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조차 모른다는게 너무 안타까워요
    비록 얼굴을 다들 못 보지만 어디서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 파이팅이야!!!

  11. 야옹야옹 2010.06.18 14:24 address edit & del reply

    아... 축사고양이들 어찌지내나 되게 궁금했는데... 여전히 마음이 아프네요.. 다른 고양이들은 다들 어디 갔을까요? ㅠㅠ

  12. 홍려 2010.06.18 14:49 address edit & del reply

    저 또한 집 없는 신세지만 왠지 산속에 조그만 오두막이라도 하나 지어주고 싶네요

  13. 흰고앵이 2010.06.18 17:15 address edit & del reply

    참 작은얼굴에 이쁜고양이인데 친구도 사귀고 길고양이가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그 동안만큼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14. Mic 2010.06.18 17:41 address edit & del reply

    마땅한 거처없이 늘상 두려움속에 생을 꾸려나가야하는 길고양이들의 생이 참 서글퍼다라고 느끼는중에 갑자기 머리속에 떠으로는 생각은, 오래전 어느 사이언스휙션 영화에서 본 문구에요. 인간과 비교할수 없이 진보된 어느 외계의 생명이 하는 말 : 지구란 별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 중에서 가장 지독한 미생물체( 바이스, 박테리아) 가 인간이란 바이러스라구요. 끎임없는 종족팽창, 자기종의 팽창을 위해 다른 모든생명들을 파괴시키고 자신이 사는 지구조차 파괴를 시켜버리는 지독한 박테리아라구요. 지구를 살리기 위해선 인간이란 바이러스를 멸종시켜야 한다는...

  15. 비글엄마 2010.06.18 17:48 address edit & del reply

    여리...여리... 잘 살아야 한다.

  16. 브리 2010.06.18 20:00 address edit & del reply

    모든 길냥이들이 시련과 함께라지만, 저리도 이쁜 코와 입을 가진 여리에게 대체 왜...ㅠㅠ

  17. 여리 2010.06.19 00:33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이쁘게 생겼네요..... 근데 참 축사냥이들 살 곳이 없어져서 너무 슬퍼요.... 다들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살아는 있는지...

  18. 유스티나 2010.06.19 01:20 address edit & del reply

    이름처럼 여리여리한 아가라 더더욱 안스럽고 외로워보이네요. 좋은 안식처와 친구들과 함께라면 참..좋을텐데요. 다른 고양이들은 어디로 간걸까요.....너무 궁금하고 걱정되네요..ㅜㅜ

  19. 별아 2010.06.21 09:31 address edit & del reply

    여리 번쩍 안아다 달리님 꽃마당에 풀어주면 안 되나요? 물으면 너무 뻔뻔한 얘기가 되겠죠?
    위생이 참 열악한 곳에 둥지를 틀었네요, 여리는...

  20. sun 2010.06.21 13:06 address edit & del reply

    우와.. 몰랐었는데 여리 너무너무 예쁘게 생겼네요-
    똘망똘망 크게 눈 뜬 모습이 정말 너무 예뻐요 >ㅅ<
    그런데 혼자서 저런곳에서 지내다니, 넘 외롭겠네요 ㅜㅅㅜ

  21. 장홍석 2010.06.30 16:47 address edit & del reply

    1Q84의 고양이 나라!

    고양이의 보은의 고양이 나라!

    하지만 현실에서 그들만의 공간은 부족한 듯!

    축사 고양이들에게 그들의 보금자리가 생기기를....영역 쟁탈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