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용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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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용감했다


 


지난겨울 어미를 고양이별로 떠나보낸 당돌이와 순둥이는
어미 없이도 어엿한 중고양이가 다 되었다.
어미가 어렵게 쟁취한 영역과 가까스로 마련한 둥지에서
당돌이와 순둥이 남매는 어미 없이 남은 겨울을 보냈고,
치열한 영역싸움과 함께 봄을 건넜으며,
어느덧 여름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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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곳은 황금영역이야... 꽃이 피었으니 꽃영역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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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용감했다.
아기고양이의 몸으로 둘은 혹독한 눈과 추위를 견뎠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와 집중호우를 이겨냈다.
무엇보다 주변 고양이들의 잦은 영역 침범에도 불구하고
남매는 여전히 골목의 황금영역을 온전히 지켜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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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면 뭐해...따먹을 수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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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매에게 가장 커다란 골칫거리는
교회냥이 그룹에서 독립을 해 이쪽으로 이주를 한 노랑이의 잦은 습격이다.
특히 내가 남매의 영역에 사료 배달을 하고 나면
어디선가 이 녀석이 나타나 남매를 내쫓고 먹이를 독차지하곤 한다.
따로 녀석에게 사료를 나눠 주어도
녀석은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지
남매의 사료를 기어이 훔쳐 먹고서야 자신의 것을 아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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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좋지 않냐...이렇게 천연 캣타워도 있고, 스크래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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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나는 녀석의 이름을 '승냥이'라고 불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승냥이가 늘 거칠게
당돌이와 순둥이를 공격한다는 것이다.
가끔 이 동네 왕초고양이 흰노랑이도 남매의 영역에서 먹이를 얻어먹지만,
왕초고양이와 남매의 사이는 돈독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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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녀석들...방심하고 있군!"

왕초냥이와 남매가 서로 어울려 대문의 그늘에서 낮잠을 자는 것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승냥이 녀석만 나타나면 전운이 감돈다.
고성이 오가고 여지없이 싸움이 시작된다.
사실 승냥이의 처지도 이해가 간다.
녀석은 태어날 때부터 이른바 ‘언청이’로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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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영역이 어서 내 차지가 되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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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에는 교회의 주방 앞에서 딱딱하게 언 어묵을 씹어먹는 녀석을 본 적도 있다.
교회냥이는 노랑이만 세 마리였는데,
봄이 되면서 녀석만 독립을 해 이곳에다 새 보금자리를 차렸다.
힘겨운 날들을 살아오다보니 녀석 또한
살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 강했다.
그것은 고스란히 당돌이와 순둥이 남매를 향한 공격성으로 표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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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고양이는 말했지. "세상은 서로 나누며 어울려 사는 거야...영역에 대한 예의...이게 길 위의 법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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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볼 때 남매가 차지한 영역이야말로
늘 안정적인 먹이가 공급되는 황금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영역을 차지하려는 야욕을 수시로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고 당돌이와 순둥이 남매가 언제나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먹이는 양보해도 영역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게
남매의 생각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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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승냥이 녀석이 또 나타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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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당돌이가 출타를 한 사이에
승냥이와 순둥이의 싸움이 벌어진 적이 있다.
그건 싸웠다기보다 순둥이가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내가 나타나자 승냥이는 혼자 먹이를 독차지하고자
대문에 앉아 있던 순둥이를 향해 꼬리털을 바짝 세우고 다가갔다.
곧이어 하악질을 하며 순둥이에게 달려들었다.
순둥이는 기겁을 하고 도망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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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려 사는 거 좋아하시네...역사란 대대로 이긴 자의 기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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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후에야 당돌이가 돌아왔다.
이번에도 승냥이는 대문에 앉아 있는 당돌이를 공격했다.
당돌이는 힘 한번 못쓰고 줄행랑을 놓았다.
그런데 잠시 후 반전이 있었다.
남매의 둥지가 있는 옆집의 철대문을 사이에 두고
당돌이 순둥이 남매와 승냥이가 대치하고 있었는데,
남매는 좌우를 번갈아가며 합동으로 승냥이를 위협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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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에서 당돌이와 순둥이를 쫓아버린 승냥이의 뒷모습.

둘의 연합작전에는 당할 수 없는지
승냥이는 꼬랑지를 내리고 도망을 쳤다.
이것이 바로 남매가 먹이는 양보해도 영역을 빼앗기지 않는 비결이었다.
둘은 모자란 힘을 모아서 이렇게 영역을 지켜오고 있었던 것이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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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글엄마 2010.06.15 11:58 address edit & del reply

    순둥이, 당돌이 야무지게 생겼어요. 승냥이도 예쁘다... 그리고 분홍빛의 꽃도 아주 예쁘네요. 이름이 뭘까요...

  3. 냐옹 2010.06.15 12:21 address edit & del reply

    그래도 전 당돌이, 순둥이 편이네요.추운겨울 엄마도 없이 힘들게 자랐는데 황금영역에서 주인노릇하며 잘지켜내길 바래요

  4. Favicon of http://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 2010.06.15 13:13 address edit & del reply

    약한 힘이지만 합해서..........ㅎㅎ
    잘 보고 갑니다.

  5. 곰돌이 2010.06.15 13:28 address edit & del reply

    1. 달리님은 이름을 항상 잘 붙이시는 거 같아요. 승냥이~ 가만이~ 당돌이~ 순둥이~ ㅎㅎ 달타냥~ 이야~~
    2. 달리님이 돌보는 아이들은 제가 밥 주는 애들보다 통실해요. 저는 잘 먹이질 못하나 봐요. ㅠㅠ 여튼 달리님 이웃동네냥들은 모두 통실하네요. ^_^ 보기 좋아요.
    3. 혼자서는 못 살아도 둘이서는 살 수 있다는 말이 이런 말이군요. ㅎㅎ
    4. 영역 이동이 빈번히 일어나는군요. 요새 즤집에도 원래 밥 주던 애들이 영역이동을 하고 한 마리가 끼어들어왔는데, 녀석이 영역 사수를 위해 엄청 분투하고 있답니다. 중고양이인데.. 눈치만 엄청 많이 보는지 눈이 눈치밥 베테랑 같아요. 아직 어린 녀석인데요. 그러면서도 끈기가 보통이 아니어서 꼭 밥을 챙겨먹는답니다. 역시 인고의 자세가 의외의 승리를 안겨 주는지도 모르겠어요. ㅋ

  6. 에휴 2010.06.15 13:43 address edit & del reply

    제가 밥 주는 곳도 정기적인 사료가 탐이 나는지
    가끔 고양이끼리 싸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밥 주는 사람 입장에서 간이 떨어질 듯 놀라는데
    제발 안싸웠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요

  7. 길냥이 구충은? 2010.06.15 13:56 address edit & del reply

    길냥이 밥주시는 분이 많네요..
    길냥이 구충에 대해 쫌 질문 4마리 정도 길냥이의 밥을 주는데요.(1마리가 어미고 2마리는 새끼인듯.. 또하나는 손님??)
    사료(캔 같은 거)에 구충약을 가루내어서 비벼주라는 데 어떤놈은 많이 먹고 어떤 놈은 적게 먹을 텐데 구충효과는 상관없나요?
    그 약 많이 먹어도 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또 약먹어도 다른 길냥이가 회충있으면 또 옮나요 아님 일정 기간은 괜찮나요?
    물어볼 데가 없어 구차하게 여기 여쭈어 봅니다. 감사~~

  8. 새벽이언니 2010.06.15 14:04 address edit & del reply

    당돌이의 눈빛은 여전히 당돌하군요
    보기 좋습니다!!
    승냥아 쫌~ 어울려 살자 좀~

  9. 미유맘 2010.06.15 16:30 address edit & del reply

    위에서 다섯 번째 사진 보고 깜놀랬습니다....여리기만 하던 순둥이가 이젠 이름도 무색하게스리 당차보이네요...갑자기 까뮈생각이 나서,,콧날이 시려옵니다..까뮈 보고 싶어요 ㅠ.ㅠ

  10. 은도리 2010.06.15 17:12 address edit & del reply

    오늘도 정말 잘 보았습니다~
    길냥이들의 영역 싸움과 먹이싸움은 정말 무섭더라구요.
    어제 제가 사료를 주는 장소에 분명히 사이좋게 나눠먹으라고, 그릇도 3개나 준비해서 사료를 주었는데도 당체 먹지를 않고 서로 울고, 으르렁 거리고, 싸우고..
    결국 이리저리 여러장소에 사료를 준 후, 한마리씩 그 자리로 유인해서 겨우 싸움을 말렸어요 ㅠ.ㅠ
    가슴 한구석이 아프더군요.. 녀석들이 삶이 치열해서요. ..
    모두들 부디 건강하길 바랍니다. 길냥이들. 모두 사랑한다~!!

  11. Favicon of http://braceinfo.tistory.com/372 BlogIcon 펫걸 2010.06.15 17:26 address edit & del reply

    들고양이인가요? 치열하네요... 귀여운 아이들을 보면서도 마음은 왠지 짠해요-
    윗 분 말씀처럼 모두 건강하길 바랍니다 ㅠㅠ
    좋은 글이 많네요, 달리님 블로그 구독하고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12. 2010.06.15 17:32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13. Favicon of https://egrim.tistory.com BlogIcon 이그림 2010.06.15 18: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당돌이와 순둥이는 꽃속에 완전 파묻혀 사네요.
    꽃에 둘러서 찍은 독사진 멋져요..

    아.. 참 이쁘다..

  14. 둥이 2010.06.15 19:30 address edit & del reply

    순둥이 임신한거 아닐까요 ㅋㅋ 녀석들 잘 먹나보군요 배가 ㅋㅋ

    • 미니 2010.06.16 09:00 address edit & del

      앗..예리하시네요.
      그러고보니 정말 젖꼭지도 좀 커진 거 같아요.. 아직 어린데 어쩌지...

  15. 금어 2010.06.15 20:44 address edit & del reply

    아.. 저도 사진 보다가 윗님의 생각과 같은 생각이 드네요.
    배도 불룩,
    혹시.... 왕초냥이랑.....?
    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어제 울 냥이급식소 근처에서도 그런 비슷한 일이 있어서요 하하하하

  16. B킨스 2010.06.16 01:36 address edit & del reply

    승냥이 녀석도 사정이 딱하니 뭐라 말을 못 하겠네요.
    두녀석 겨울에 글을 본게 생각이 나네요.
    대견하게 잘 자라줘서 넘 고맙네요.
    씩씩하게 잘 자라서 자기 자기는 자기가 지킬 줄 아는 힘을 지켜나가길 바랍니다.
    그나저나 두루 두루 잘 어울려살면 좋으려만...
    세상의 모든 고양이 안타까워요.

  17. 별아 2010.06.16 08:24 address edit & del reply

    화이팅!! 당돌이와 순동이 잘 해내고 있어!! 응원보낸다.
    승냥아, 너도 힘내! 하지만 길위의 법칙은 지켜가면서 응?
    그런데, 순둥이가 아기를 가진 것 같은데요, 불룩한 배와 젖꼭지를 보니...

  18. 호야미야 2010.06.16 10:00 address edit & del reply

    다 먹고 살려고 애쓰는 고양이들..
    아이고 짠해라 ㅠ_ㅠ

  19. 알럽냥냥 2010.06.16 21:47 address edit & del reply

    ㅠㅠ 왠지 씁쓸하네요...
    모두다 배불리먹고 안정된 영역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20. 고양이 2010.06.18 11:37 address edit & del reply

    참.. 엄마 없이 장하게 컸네요....
    크는 동안 많이 배우고 또 강해졌을 거에요.
    맘이 짠합니다....

  21. 장홍석 2010.06.30 16:51 address edit & del reply

    이 녀석들 기억합니다.

    어미냥은 골목길에 부서진 밥그릇을 남기고 쓰레기장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지요.

    이 녀석들은 어미가 손지검 당하는 것을 봤을 겁니다.

    잘 커라...잘 크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