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맥주가 세계 최고인 이유
세계의 맥주전문 사이트와 애주가들이 뽑는 맥주 랭킹에 단골로 1위 자리를 차지하는 맥주가 있다. 벨기에의 '트라피스트 베스트벨레테레'(Trappist Westveleteren)가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해마다 맥주 랭킹에서 벨기에 맥주는 10위 안에 항상 3~4개의 맥주가 포함되곤 한다. 최고의 맥주로 꼽는 베스트벨레테레는 식스투스 수도원에서 160년 전부터 만들어온 맥주로, 수도사들에 의해 소량 생산되므로 사실상 일반인들이 수도원을 직접 방문하지 않는 한 그것을 맛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벨기에에서는 이 맥주가 생산되는 때를 기다려 인근에서 며칠씩 머물며 수도원 맞은편 데브레데(De Vrede) 퍼브를 찾아 베스트벨레테레를 기어코 맛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베스트벨레테레는 꿈의 맥주나 다름없다.
오거스틴 수도원의 수도사가 '오거스틴' 라벨을 붙인 맥주를 들고 수도원 복도에 서 있다.
세계 최고의 맛, 수도원 맥주
한국의 홍대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벨지안 마크 씨는 베스트벨레테레야말로 맥주가 낼 수 있는 최고의 맛이라고 표현한다. “맛과 향이 설명할 수 없이 고급스러운, ‘섬세하게 익은 술’이 바로 베스트벨레테레입니다. 음식과 술맛에 까다로운 벨지안들조차 베스트벨레테레만큼은 모두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마 수도사들이 발효 과정을 까다롭게 관리하는 것이 비결인 것같습니다.” 베스트벨레테레처럼 맛과 향이 으뜸인 최고급 맥주는 대부분 수도원 맥주이거나 수도원의 비법을 전수받은 맥주들이다.
오거스틴 수도원에서 맥주 비법을 전수받은 오거스틴 맥주공장의 샴페인 맥주 생산 라인.
하지만 벨기에에서조차 맥주를 제조해 파는 수도원은 사실상 몇 군데 남지 않았다. 더구나 그런 수도원일지라도 일반인에게 수도원 맥주 비법과 제조과정은 철저한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 아예 이런 수도원은 출입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르페(Leffe)나 호하르데(호가든으로 알려짐, Hoegaarden)도 과거에는 수도원 맥주였으나, 이제는 맥주공장에 그 비법과 상표를 넘겨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다. 벨기에에서는 베스트벨레테레를 포함해 시메(Chimay)나 오르발(Orval) 등이 수도원 맥주로 유명하다. 수도원 맥주 가운데서도 특별히 맛과 향이 최고급인 맥주는 트라피스트(Trappist)라 부르며, 현재 이를 인정받고 있는 맥주는 6종에 불과하다. 그 중에 4종만이 여전히 수도원에서 생산과 판매를 해오고 있다.
맥주의 원료 호프 냄새를 맡고 있는 오거스틴 맥주공장 제프 버셀레 사장.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어트벨데(Ertvelde)에 자리한 오거스틴(Augustijn) 맥주공장도 헨트의 오거스틴 수도원에서 그 비법과 상표를 들여와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거스틴 수도원은 다른 수도원과 마찬가지로 예배당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의 출입이 전면 금지되어 있다. 오거스틴 맥주는 수도원이 문을 연 시절부터 시작되었으며, 50년 전 맥주 제조가 중단된 뒤, 지금의 오거스틴 맥주공장에서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 맥주 공장에서는 수도원에 로열티를 지불하는데, 지금의 수도원 맥주는 사실상 이런 식으로 명맥과 라벨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 수도원에서는 수도사들이 맥주를 만들어 팔아 그것으로 수도 생활을 했다고 한다. 오거스틴 수도원에서 만난 한 수도사에 따르면 마시는 물이 좋지 않아 물 대신 맥주를 마셔야 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맥주는 식수 대용으로도 마셨지만, 영양이 부족하던 시절 영양을 공급하던 음료이기도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수도원 맥주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14세기 중반 유럽 전역을 휩쓸던 흑사병과 세계 1, 2차대전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오염된 물 대신 수도원에서 일반인에게 맥주를 나눠 줌으로써 수많은 생명을 살려낸 것이다.
체리 맥주와 여인.
벨기에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무려 1천여 종
오거스틴 맥주를 생산하는 오거스틴 맥주공장은 생각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벨기에에서는 랭킹 10위 안에 드는 맥주회사이다. 7대에 걸쳐 가업으로 내려온다는 이곳의 공장에서는 오거스틴을 비롯해 22가지의 맥주를 만들고 있는데, 여기서 생산하는 상당수의 맥주는 수출용이며,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대만이 주 수입국이다.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발효 과정을 두 번이나 거치면서 맥주의 향과 맛을 높이고 있습니다. 적당한 온도를 유지한 가운데 병째로 창고에서 2주 정도 보관하면서 한번 더 병속 발효기간을 거쳐 출고하는 것이 우리 맥주맛의 비밀입니다.” 7대째 가업을 잇는 제프 버셀레(Jef Versele) 사장의 말이다.
맥주공장 한 곳에서 무려 22가지의 맥주 종류를 생산한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벨기에에서는 지역 곳곳에 자리한 대부분의 맥주공장이 수십 가지 종류의 맥주를 만들어낸다. 하여 벨기에에서 생산되는 맥주의 종류는 모두 1000여 종에 달한다. 벨기에에서 가장 대중적인 병맥주는 주필러(Jupiler), 스텔라(stella), 마스(Maes) 라벨을 붙인 것이고, 생맥주로는 호하르데와 르페, 흐림베르헤(Grimbergen)가 유명하다. 벨기에에는 체리나 나무딸기, 버찌, 복숭아, 블루베리 등과 같은 달콤하고 향이 좋은 과실 랑비크(Lambic, 효모를 첨가하지 않은 맥주)도 수없이 많다.
샴페인 맥주와 콰크(Kwak) 같은 특이한 맥주도 있다. 특히 콰크는 바닥이 둥근 유리잔(홈이 둥글게 파인 받침대가 따라나온다)에 마셔야 제맛이라고 한다. 벨기에에서는 맥주의 라벨마다 잔이 모두 다르다. 벨기에의 퍼브에서 만일 라벨과 다른 잔을 내왔다면, 그건 순전히 웨이터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벨기에에서 맥주는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이자 즐거운 삶을 추구하는 에너지원이나 다름없다. 벨기에에서는 아이들조차 맥주를 마시며, 아침 식사에도 맥주를 곁들인다. 아이들이 마시는 맥주는 주스맛이 나고, 아침용 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약한 게 특징이다.
저녁 무렵이면 벨기에의 거리와 퍼브는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지 않는다. 마치 와인을 마시듯 맥주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마신다. 브뤼셀과 안트베르펜, 브뤼헤 등에는 맥주 박물관이 있으며, 맥주 제조과정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맥주공장도 여러 곳이다. 이제 벨기에 맥주는 유럽에서 하나의 인기 있는 관광 상품으로 자리잡았으며, 실제로 맥주로 유명한 독일이나 네덜란드에서조차 벨기에로 맥주 관광을 오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벨기에의 유명한 맥주 퍼브들
맥주의 나라답게 벨기에에는 도시마다 이름난 맥주퍼브가 있다. 브뤼셀에서는 랑비크를 비롯한 다양한 전통 맥주를 파는 라 베카스(La Becasse)가 알려져 있으며, 샤트로 거리에 있는 그리니치(Le Greenwich, 02-511-4167)는 체스 시합을 즐기며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다. 헨트에는 옛날 교수대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을 퍼브로 만든 행잉하우스가 유명하다. 헨트의 행잉하우스는 벨기에에서 가장 작은 맥주집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테이블이 고작 4개밖에 없다.
안트베르펜에 있는 퀸튼 매치스(Quinten Matsijs)는 1565년에 생긴 유서 깊은 맥주퍼브 중 한 곳이다. 과거 이 곳은 1층이 마굿간이고, 2층이 여행자 숙소였던 것을 퍼브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퍼브 입구에는 이 곳을 다녀간 유명한 과학자와 작가, 화가들의 얼굴도 그려놓아 눈길을 끈다. 또한 안트베르펜에는 일반 퍼브로서는 드물게 베스트벨레테레 맥주를 파는 오드 아르세날(Oud Arsenaal, 02-232-9754)이 알려져 있다. 브뤼헤에는 1515년에 생겨난 허베르 블리싱헤(Herberg Vlissinghe)라는 맥주 퍼브가 아직도 문을 열어놓고 있으며, 무려 250여 가지의 벨기에 맥주를 파는 브뤼헤 비어체(Beertje)는 벨기에에서 가장 유명한 퍼브 중 한 곳이다. 보통 맥주는 2~8 EUR까지 맛과 품질에 따라 가격이 다양하다.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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