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고양이, 아기고양이 데리고 귀환
지난봄 영역에서 갑자기 사라진 무심이가 돌아왔다. 무럭이, 무던이와 함께 못된 짓을 당해 고양이별로 떠난 줄로만 알았던 무심이가 돌아왔다. 녀석을 극적으로 다시 만난 건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약 5개월만의 귀환. 그것도 혼자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세 마리의 새끼를 데리고 깜짝 귀환한 것이다. 장마가 한창일 때 나는 폐차장의 망가진 승용차 속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녀석을 보았다. 세 마리의 아기고양이에 둘러싸인 무심이. 녀석들은 비를 맞지 않으려고 서로의 몸을 잔뜩 밀착시킨 채 폐차 속의 등받이 위에 뒤엉켜 있었다. 놀랍게도 그 옆에는 이 동네 왕초고양이 흰노도 함께 있었다. 누가 봐도 그건 흰노가 아빠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5개월만에 귀환한 무심이의 아기고양이 중 한 마리. 검은 줄무늬 꼬리에 하얀색 털이 인상적이다. 뒤에서 봐도 정말 멋진 모습이다.
처음에 나는 아기고양이와 뒤엉켜 자는 녀석이 순둥이인줄로만 알았다. 비가 퍼붓고 있었고, 차안이 캄캄해서 제대로 식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장맛비가 잠시 그친 어느 날 예전의 영역이었던 개울집 앞을 어슬렁거리는 녀석을 보고, 나는 놀란 눈으로 재차 녀석을 확인했다. 무심이가 확실했다. 녀석은 마치 잠시 외출에서 돌아온 양 무심하게 내 앞을 지나 개울집 봉당에 가 앉았다. 내가 사료를 한 움큼 내밀고 부르자 녀석은 예전의 나를 대하듯 경계심도 없이 나에게 다가왔다. “인석, 언제 왔냐? 무럭이는 같이 안 왔냐?” 녀석은 무심하게 사료만 씹어 먹었다.
정미소 양철문을 빠져나오는 노랑이와 얼룩이.
다시 5개월 전으로 돌아가 보자면, 녀석은 당시 임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신묘인 녀석은 안전한 출산과 육묘를 위해 ‘쥐약의 공포’가 도사린 이곳을 떠났을 것이다. 하필이면 무럭이와 무심이도 그 무렵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다. 녀석들뿐만 아니라 이곳에 꾸준히 사료 동냥을 오던 삼촌 고양이 당돌이도 함께 행적을 감추었다. 나는 그것이 쥐약 아줌마의 나쁜 소행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무심이는 그것과 상관없이 영역을 옮겼을 가능성이 높다. 임신묘인 무심이는 뱃속의 아기들을 위해 ‘킬링 필드’를 속히 떠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떠났던 무심이는 세 마리의 아기고양이와 함께 화려하게 귀환했다. 새끼들을 보건대 이제 거의 3개월령은 돼 보인다.
정미소 양철문 앞에서 밥을 먹고 있는 꼬리 줄무늬 흰냥이(위). "아저씨, 그 사료 뭔지 맛있네. 더 주세요!"(아래).
무심이와 달리 세 마리의 아기고양이는 경계심이 유별난 편이다. 내 발자국 소리에도 녀석들은 기겁을 하고 도망을 친다. 최근에 무심이는 겁 많은 아기고양이를 이끌고 정미소 건물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며칠 전부터 이틀에 걸쳐 나는 정미소 양철문을 들락거리는 녀석들을 만났다. 보아하니 녀석들은 엄마를 따라 개울집 급식소로 먹이원정을 가는 듯 보였는데, 겁이 어찌나 많은지 도로에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자전거나 차가 지날 때마다 개울집으로 향하던 걸음을 되돌려 정미소 양철문 아래로 숨어들곤 했다. 큰길이어서 차는 수시로 다녔고, 녀석들도 수시로 양철문 속을 파고들었다. 몇 걸음 문 앞을 걸어나왔다가 도로 문 속으로 들어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정미소와 개울집 급식소까지는 불과 30~40미터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녀석들에게는 그 길이 십리나 되는 것처럼 멀어보였다. 더구나 개울집과 정미소 사이에는 쥐약 아줌마가 사는 식당집이 자리해 있다. 그 아줌마 눈에 띄었다가는 무슨 사단이 벌어질지 모른다.
어미와 함께 개울집 급식소로 먹이원정을 가는 아기고양이(위).
전속력으로 쥐약 아줌마가 사는 식당 앞을 달려 정미소로 돌아오는 녀석(위). "아 무셔! 비켜비켜 엄마가 젤루 무섭다고 하는 그 쥐약 아줌마야~!"(아래).
차창을 반쯤 내리고 몰래 지켜보는 내 가슴이 다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다른 무엇보다 아기고양이들이 식당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쥐약 아줌마가 혹시라도 문을 열고 나올까봐 간이 콩알만해졌다. 기껏 개울집까지 도착한 아기고양이는 급식소 부엌에서 사료를 먹다말고 인기척이 나면 다시금 길을 내달려 정미소로 되돌아왔다. 이게 무슨 호러물도 아니고 갑자기 튀어나올 괴물(?) 때문에 숨 막혀서 못 보겠다. 아니나 다를까. 한번은 녀석들 중 꼬리만 줄무늬고 온몸이 하얀 아기고양이가 식당 문앞을 막 달려가는데, 아줌마가 갑자기 쾅, 문을 열고 나왔다. 가슴을 졸이며 사이드 미러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아기고양이 녀석 이리도 못가고 저리도 못가더니 결국 식당 앞 화분 뒤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들키지는 않았다. 저러다 아줌마가 화분에 물 주러 가면 어쩌지?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아줌마가 성큼성큼 화분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손을 쑥 내밀어 화분 옆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어올렸다. 화분 뒤에 숨어 있던 아기고양이의 움찔 하는 기색이 여기까지 전해져왔다.
정미소 앞 아기고양이 세 마리(위). 어미 무심이와 아기고양이 두 마리(아래).
아줌마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식당 안으로 사라졌다. 아줌마가 사라지자마자 아기고양이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정미소를 향해 질주했다. 양철문 앞에는 방금 문을 빠져나온 얼룩이가 차안에서 지켜보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데, 갑자기 달려온 녀석 때문에 기겁을 하고 놀라 하악거렸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위험해서 안 되겠다. 나는 차에서 내려 정미소 양철문 안으로 사료를 한 움큼 밀어넣었다. 곧바로 안에서는 아작아작 사료 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정미소 문앞을 기웃거리자 개울집 차밑에 앉아 있던 무심이도 식당을 지나 양철문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5분도 지나지 않아 아기 노랑이가 고개를 빼꼼 양철문 밖으로 내밀었다. 사료를 다 먹었으니 조금 더 달라는 의사표현 같았다. 나는 양철문 오른쪽 잡초 사이에 다시 한 움큼 사료를 내려놓았다. 마음 같아선 사료를 왕창 부어주고 싶었지만, 식당 주인의 눈에 띄어 좋을 건 없었다. 수북하게 쌓아놓은 사료는 금세 발각될 것이 분명했다.
정미소 양철문을 빠져나오는 무심이(위). 사료를 먹고 있는 아기고양이(아래).
나는 그렇게 한 움큼씩의 사료를 다섯 번에 걸쳐 몰래몰래 내려놓고 왔다. 이거야말로 정말 007 작전이 따로 없었다. 내가 무슨 죄인이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기고양이의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다섯 번의 사료 배달로 아기고양이는 어느 정도 나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녀석들은 이제 차에서 내려 도로 건너편에서 지켜보는 것을 허용했다. 차량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무심이는 아예 새끼들을 다 데리고 나와 사료를 먹였다. 세 마리 아기고양이는 저마다 외모와 개성이 뚜렷했다. 누런 갈색 얼룩이는 장난꾸러기에 호기심이 충만했고, 등뼈를 따라 노랑무늬가 드리운 아기 노랑이는 소심하지만 차분했다. 무늬가 특이해서 처음 볼 때부터 내 눈을 사로잡은 줄무늬 꼬리 하얀색 아기고양이는 앞뒤 안 가리고 일단 행동해 보는 성격이었다.
"근데 뭔 사료를 감질나게 주고 있냐. 왕창 주고 가지..."
자세히 보니 줄무늬 꼬리 하얀색 아기고양이 녀석, 이마와 머리 쪽에도 줄무늬가 나 있고, 왼쪽 등에는 검은 털이 점박이처럼 박혀 있었다. 이 녀석 등을 돌려 뒷모습을 내게 보여주는데, 정말 멋진 모습이었다. 오래 전 라오스에 갔을 때 꼬리만 줄무늬가 있고, 온몸이 하얀색으로 덮여 있던 고양이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녀석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이 녀석들만큼은 오래오래 살아남아야 할 텐데. 하필이면 고양이의 ‘킬링 필드’라 할 수 있는 이곳의 한복판이 영역이어서 걱정이 된다. 아, 이런 걱정 안해도 되는 세상은 언제 오는 거냐? 고양이가 고양이답게 사는 세상은 언제 오는 것이냐? 오긴 오는 것이냐?
"아저씨 오랜만이네요. 별일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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