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있어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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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가 있어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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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장미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

우리는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보도블럭과 아스팔트와 아파트와 사무실의 시멘트를 밟고 있을 때조차
우리가 땅위의 존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인이거나 도시인은 더이상 내 발밑에 무언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
느낄 새가 없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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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이끼밭의 달팽이.

심지어 우리는 출근길의 꽉 막힌 도로에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려고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대곤 한다.
‘내 삶의 속도가 몇 km’인지 따위는 신경쓸 겨를조차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발밑의 보도블럭에 핀 작은 꽃들과 나무를 기어오르는 작은 벌레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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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라는 속도가 인간의 발 대신 시간을 절약해 주었지만,
시간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
오히려 우리는 다른 곳에서 더 바빠졌다.
손가락 대신 컴퓨터가 일을 대신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왜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것인가?
느린 것은 나쁘고 답답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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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이끼밭의 달팽이.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도대체 느려빠진 달팽이란 녀석은 자연계의 낙오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달팽이는 인간보다 더 오랜 세월 지구에서 살아왔고,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서 살아갈 것이 거의 확실하다.
우리가 몸밖의 것들을 수없이 진화시키는 동안 달팽이는 아무것도 진화시키지 않았다.
녀석들은 아주 느리게 움직임으로써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해 왔다.
기껏해야 녀석들의 먹이는 풀과 껍질 정도면 충분하다.
먹은 것들은 고스란히 배설물로 자연에 되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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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까치수염 꽃 위를 느긋하게 기어가는 달팽이.

녀석들은 집이 부서져도 거뜬하다.
일주일 정도면 부서진 집이 고스란히 복구된다.
인간에게 늘 느림보의 대명사로 손가락질받아온 달팽이는 사실상 지구의 환경에 가장 훌륭하게 적응한 생물이다.
녀석들은 인간이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묵묵히
망가진 지구를 복원하는 임무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다.
그러므로 달팽이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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