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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18 날아라 고양이 53
날아라 고양이
누구나 알다시피 고양이에게는 날개가 없지. 하지만 날개가 없다고 날지 못하는 건 아니야. 마음만 먹으면 고양이도 얼마든지 날 수가 있어. 그건 단지 ‘점프’에 불과하다고? 물론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분명한 건 그 누구도 고양이처럼 점프할 수는 없다는 거야.
고양이는 3미터가 넘는 지붕에서도 뛰어내릴 수 있고, 이쪽 담장에서 저쪽 담장으로 순간 이동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도무지 건너뛸 수 없는 개울의 폭도 가볍게 넘어버리지. 고양이가 날짐승은 아니지만, ‘나비’로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
어느 날엔가 나는 개울에서 노니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어. 내가 봉달이라고 이름붙인 그 녀석은 개울이 자신의 영역이자 놀이터이고 휴게소였지.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 고양이가 하늘로 날아올라 저 개울을 뛰어넘으면 얼마나 멋질까? 그래서 나는 개울에 있는 고양이에게 주문을 걸기로 했지. “날아라 고양이, 얍!” 그러자 거짓말처럼 고양이가 풀쩍 날아올랐어. 잠시 정지화면을 누른 것처럼 녀석은 공중에 한참이나 머물렀지. 흐르는 냇물도 숨을 죽였고, 날아가는 새들도 가던 길을 멈췄지. 믿을 수가 없었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나 극적인 우연이어서 그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지.
갑자기 마법사가 된 기분이었어. 나는 한번 더 주문을 외었지. “날아라 고양이, 얍!” 그럼 그렇지. 고양이는 꿈쩍도 하지 않고, 개울가를 거닐고 있었지. 아무리 유능한 마법사라도 주문을 남발하면 안되는 것인데, 마법사도 아닌 내가 주문을 남발했던 거야. 그래도 어쨌든 그날 나는 처음으로 고양이가 날아서 개울을 넘는 것을 보았어. 이튿날 나는 또 개울가로 나갔지. 그날도 봉달이 녀석은 개울가를 배회하고 있었어. 나는 또 주문을 걸어볼까 하다가 그냥 참기로 했어. 대신 녀석이 눈치 채지 못하게 숨어서 지켜보기로 했지.
잠시 후 나는 또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어. 주문을 외우지도 않았는데 녀석이 또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개울 저쪽으로 풀쩍 하고 넘어가버린 거야. 가만 보니 이 녀석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어. 간결한 점프, 군더더기 없는 비행자세, 안정적인 착지. 그래 고양이는 분명 날아올랐어. 점프라고 하기엔 너무 높이, 너무 멀리, 너무 오래 고양이는 날았던 거야.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아간 고양이는 갈대숲으로 들어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어. 추측하건대 그곳에 들쥐라도 나타난 게 아닐까. 아니면 물새 사냥을 위해 잠시 몸을 숨기고 있었는지도.
잠시 후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참았던 주문을 외우기로 했지. “날아라 고양이, 얍!” 그 때였어. 녀석이 거짓말처럼 또 날아오른 거야. 누군가는 그러겠지. 말도 안돼.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난 뒤에도 그 일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지. 그러나 나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어. 사실은 녀석이 집으로 가려면 다시 개울 이쪽으로 건너와야 했고, 갈대밭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이쪽으로 건너올 시점이 되었던 거지. 한마디로 때를 맞춰 주문을 외운 셈이야.
세 번이나 녀석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나는 생각했어. ‘하늘을 나는 고양이’ 화보를 찍어도 되겠군. 그리고 그날 이후 매일같이 나는 개울가로 나와 봉달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지. 그런데 말이야, 이 녀석 그렇게 쉽게 날아오르는 녀석은 아니더군. 일주일이 지나도록 녀석은 점프 한번 하지 않았어. 그런가하면 어떤 날은 하루에도 서너 번이나 공중을 날아올랐지. 문제는 느려터진 내 손가락과 멍청한 카메라였어. 고양이가 다섯 번을 날아올랐다 치면 제대로 나는 모습을 찍은 건 한번이 될까말까였어. 성공률 20%도 안되는 확률이었던 거지.
고백하자면 맨 처음 봉달이가 개울에서 점프하는 모습을 목격한 건 지난 해 12월 초였어. 그날 이후부터 나는 3월 중순까지 줄곧 녀석이 날아오르기만을 고대했고, 날아오를 때마다 셔터를 누르곤 했지. 가끔은 욕심이 앞서서 주문을 외는 대신 내가 직접 개울로 내려가 녀석을 개울 앞까지 유인해 점프를 유도해 보기도 했지만, 고양이가 무슨 훈련된 개도 아니고, 시키는대로 할 리가 만무했어. “봉달아 한번만 높이 날아 볼래?” 그 때마다 봉달이는 날아오르는 대신 으냐앙, 하고 먹이나 내놓으라는 거야. 한번은 녀석의 날아오르는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3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지. 결국은 실패했어. 그래도 지난 100여 일 동안 봉달이는 수없이 날아올랐어. 그런 녀석을 보고 있으면, 고양이가 날짐승이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해.
사실 이 세상에는 날지 못하는 고양이가 더 많아. 날고 싶어도 날 수가 없는 고양이. 다리를 다쳐서 혹은 마음을 다쳐서 날 수가 없는 고양이. 더러는 너무 오래 날지 않아서 날 수가 없게 된 고양이도 있지. 빌딩숲에 갇혀 날고 싶어도 날아오를 하늘이 없어 날 수가 없는 고양이도 있어. 가장 마음 아픈 건 날 수 없는 고양이가 아니라 날고 싶지 않은 고양이야. 날고 싶은 의지도, 날아오를 힘도 없는 고양이. 만일 그런 고양이가 있다면 간절한 마음으로 주문을 외는 거야. “날아라 고양이, 얍!” 혹시 알아. 정말로 날아오를지. 가끔은 이런 공상도 하지. 고양이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날 한시에 똑같은 주문을 외는 거야. “날아라 고양이, 얍!” 그러면 세상의 모든 고양이가 한날 한시에 똑같이 날아오르겠지. 생각만 해도 정말 신나는 일이야. 뭐 어때, 어차피 생각만 하는 건데...
* 후일담: 지난 해 12월 초부터 3월 중순까지 나는 봉달이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찍기 위해 거의 매일같이 개울을 찾곤 했다. 사실 물이 흐르는 개울은 고양이가 가장 싫어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개울을 영역으로 살아가는 봉달이만큼은 예외였다. 녀석은 열 번 중에 대여섯 번은 개울에 나와 있었고, 개울에서 보았던 열 번 중에 두세 번은 개울을 건너기 위해 점프를 하곤 했다. 본래 ‘날아라 고양이’ 프로젝트는 이번 가을까지 사계절의 풍경을 담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하천정비사업을 한다고 프크레인이 개울을 파헤치기 시작해 예전의 구불구불하던 자연하천을 일직선으로 만들어버렸다. 개울 깊이는 얕아졌지만, 개울의 폭이 예전이 3~4배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봉달이는 더 이상 개울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뛰는 점프 따위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그 뒤로는 이 녀석 개울에 나와서 노닐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어쩔 수 없이 나의 ‘날아라 고양이’ 프로젝트도 아쉽게 끝이 났다.
어느 날엔가 나는 개울에서 노니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어. 내가 봉달이라고 이름붙인 그 녀석은 개울이 자신의 영역이자 놀이터이고 휴게소였지.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 고양이가 하늘로 날아올라 저 개울을 뛰어넘으면 얼마나 멋질까? 그래서 나는 개울에 있는 고양이에게 주문을 걸기로 했지. “날아라 고양이, 얍!” 그러자 거짓말처럼 고양이가 풀쩍 날아올랐어. 잠시 정지화면을 누른 것처럼 녀석은 공중에 한참이나 머물렀지. 흐르는 냇물도 숨을 죽였고, 날아가는 새들도 가던 길을 멈췄지. 믿을 수가 없었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나 극적인 우연이어서 그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지.
갑자기 마법사가 된 기분이었어. 나는 한번 더 주문을 외었지. “날아라 고양이, 얍!” 그럼 그렇지. 고양이는 꿈쩍도 하지 않고, 개울가를 거닐고 있었지. 아무리 유능한 마법사라도 주문을 남발하면 안되는 것인데, 마법사도 아닌 내가 주문을 남발했던 거야. 그래도 어쨌든 그날 나는 처음으로 고양이가 날아서 개울을 넘는 것을 보았어. 이튿날 나는 또 개울가로 나갔지. 그날도 봉달이 녀석은 개울가를 배회하고 있었어. 나는 또 주문을 걸어볼까 하다가 그냥 참기로 했어. 대신 녀석이 눈치 채지 못하게 숨어서 지켜보기로 했지.
잠시 후 나는 또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어. 주문을 외우지도 않았는데 녀석이 또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개울 저쪽으로 풀쩍 하고 넘어가버린 거야. 가만 보니 이 녀석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어. 간결한 점프, 군더더기 없는 비행자세, 안정적인 착지. 그래 고양이는 분명 날아올랐어. 점프라고 하기엔 너무 높이, 너무 멀리, 너무 오래 고양이는 날았던 거야.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아간 고양이는 갈대숲으로 들어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어. 추측하건대 그곳에 들쥐라도 나타난 게 아닐까. 아니면 물새 사냥을 위해 잠시 몸을 숨기고 있었는지도.
잠시 후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참았던 주문을 외우기로 했지. “날아라 고양이, 얍!” 그 때였어. 녀석이 거짓말처럼 또 날아오른 거야. 누군가는 그러겠지. 말도 안돼.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난 뒤에도 그 일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지. 그러나 나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어. 사실은 녀석이 집으로 가려면 다시 개울 이쪽으로 건너와야 했고, 갈대밭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이쪽으로 건너올 시점이 되었던 거지. 한마디로 때를 맞춰 주문을 외운 셈이야.
세 번이나 녀석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나는 생각했어. ‘하늘을 나는 고양이’ 화보를 찍어도 되겠군. 그리고 그날 이후 매일같이 나는 개울가로 나와 봉달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지. 그런데 말이야, 이 녀석 그렇게 쉽게 날아오르는 녀석은 아니더군. 일주일이 지나도록 녀석은 점프 한번 하지 않았어. 그런가하면 어떤 날은 하루에도 서너 번이나 공중을 날아올랐지. 문제는 느려터진 내 손가락과 멍청한 카메라였어. 고양이가 다섯 번을 날아올랐다 치면 제대로 나는 모습을 찍은 건 한번이 될까말까였어. 성공률 20%도 안되는 확률이었던 거지.
고백하자면 맨 처음 봉달이가 개울에서 점프하는 모습을 목격한 건 지난 해 12월 초였어. 그날 이후부터 나는 3월 중순까지 줄곧 녀석이 날아오르기만을 고대했고, 날아오를 때마다 셔터를 누르곤 했지. 가끔은 욕심이 앞서서 주문을 외는 대신 내가 직접 개울로 내려가 녀석을 개울 앞까지 유인해 점프를 유도해 보기도 했지만, 고양이가 무슨 훈련된 개도 아니고, 시키는대로 할 리가 만무했어. “봉달아 한번만 높이 날아 볼래?” 그 때마다 봉달이는 날아오르는 대신 으냐앙, 하고 먹이나 내놓으라는 거야. 한번은 녀석의 날아오르는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3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지. 결국은 실패했어. 그래도 지난 100여 일 동안 봉달이는 수없이 날아올랐어. 그런 녀석을 보고 있으면, 고양이가 날짐승이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해.
사실 이 세상에는 날지 못하는 고양이가 더 많아. 날고 싶어도 날 수가 없는 고양이. 다리를 다쳐서 혹은 마음을 다쳐서 날 수가 없는 고양이. 더러는 너무 오래 날지 않아서 날 수가 없게 된 고양이도 있지. 빌딩숲에 갇혀 날고 싶어도 날아오를 하늘이 없어 날 수가 없는 고양이도 있어. 가장 마음 아픈 건 날 수 없는 고양이가 아니라 날고 싶지 않은 고양이야. 날고 싶은 의지도, 날아오를 힘도 없는 고양이. 만일 그런 고양이가 있다면 간절한 마음으로 주문을 외는 거야. “날아라 고양이, 얍!” 혹시 알아. 정말로 날아오를지. 가끔은 이런 공상도 하지. 고양이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날 한시에 똑같은 주문을 외는 거야. “날아라 고양이, 얍!” 그러면 세상의 모든 고양이가 한날 한시에 똑같이 날아오르겠지. 생각만 해도 정말 신나는 일이야. 뭐 어때, 어차피 생각만 하는 건데...
* 후일담: 지난 해 12월 초부터 3월 중순까지 나는 봉달이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찍기 위해 거의 매일같이 개울을 찾곤 했다. 사실 물이 흐르는 개울은 고양이가 가장 싫어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개울을 영역으로 살아가는 봉달이만큼은 예외였다. 녀석은 열 번 중에 대여섯 번은 개울에 나와 있었고, 개울에서 보았던 열 번 중에 두세 번은 개울을 건너기 위해 점프를 하곤 했다. 본래 ‘날아라 고양이’ 프로젝트는 이번 가을까지 사계절의 풍경을 담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하천정비사업을 한다고 프크레인이 개울을 파헤치기 시작해 예전의 구불구불하던 자연하천을 일직선으로 만들어버렸다. 개울 깊이는 얕아졌지만, 개울의 폭이 예전이 3~4배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봉달이는 더 이상 개울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뛰는 점프 따위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그 뒤로는 이 녀석 개울에 나와서 노닐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어쩔 수 없이 나의 ‘날아라 고양이’ 프로젝트도 아쉽게 끝이 났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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