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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10 "할머니 같이 가요!" 30
"할머니 같이 가요!"
"할머니 같이 가요!"
달타냥이 할머니를 따라간다.
보아하니 이 녀석 마을회관 앞 차 밑에 앉아 있다가
마을회관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나오자
어슬렁어슬렁 차 밑에서 걸어나와
줄레줄레 할머니 뒤를 따라간다.
"할머니 같이 가요! 왜케 걸음이 빠르셔..."
저녁 5시의 햇살은 노랗게 부서지는데,
기다림을 아는 고양이 한 마리 할머니를 따라간다.
우리 동네 할머니들
매일같이 마을회관으로 마실 왔다가 저녁 5시만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달타냥도 그것을 아는지
이 시간이 되면 모든 일정을 접고
마을회관 앞에서 할머니를 기다리곤 한다.
물론 예전에 비해 녀석이 할머니를 따라다니는 일이
조금 소홀해진 것 같긴 하지만,
할머니를 따르는 마음만은 여전하다.
"아앙~ 요즘 너무 뜸한 거 아니에요?"
그런데 오늘 어찌어찌 생긴 소시지 간식을 주러
파란대문집에 갔다가 마음이 시린 일이 있었다.
이 녀석 나를 보더니 대문 앞으로 나오긴 했는데,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슬금슬금 도망을 치는 거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로 발밑에서 발라당을 하고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어도 가만이 있던 녀석이 갑자기 경계심을 보인 것이다.
하긴 그러고보니 겨우내 녀석의 잦은 가출로 자주 보지 못하긴 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오늘 자세히 보니 녀석의 엉덩이 쪽에 커다란 상처가 나 있었다.
지난 초겨울까지만 해도 없던 상처였다.
이번 겨울에 생긴 상처가 틀림없었다.
오른쪽 눈가의 털도 뜯긴 자국이 있다.
다른 고양이와 싸움이 붙어 생긴 상처일 수도,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해 생긴 상처일 수도 있다.
달타냥 녀석 못보는 사이 엉덩이 쪽과 눈가에 상처가 났다.
어떤 것이건 녀석이 몸 아픈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열흘 전쯤에도 대문 앞에서 만나 사진까지 찍었으면서
유심히 살펴보지도 않았던 거다.
하긴 그러고보니 그때도 평소와 다르게 나를 경계했던 것같다.
사실 그 점이 마음을 시리게 했다.
나를 경계하는 것이 혹시나
다른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해 사람만 보면 피하는 게 아닐까, 하는.
믿고 따랐던 사람에게서 어떤 상처를 받았을까봐.
그래서 어느 날부턴가 사람이 무서워졌을까봐.
다시는 사람에게 정 따위 주지 않겠노라며 속으로 울었을까봐.
단지 나는 그게 슬펐다.
그래도 할머니만큼은 저렇게 믿고 따르는 것을 보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 같이 가요!"
그렇게 같이 갈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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