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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6 어미 노릇 하기 참 힘들다 35

어미 노릇 하기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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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노릇 하기힘들다




얼마 전에 주황대문집 헛간에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던 여울이.
개울집에서 꽁치를 물고 뿌듯한 마음으로 새끼들에게 달려가던 여울이.
집주인이 자리를 비울 때면 마당에 나와 어미를 기다리던 아기고양이들.
어미 앞에서 뒤집뒤집 발라당을 하고
마당 이쪽에서 저쪽까지 우다다를 했던 아기고양이들.
이곳은 한동안 고양이들이 북적거리는 ‘고양이 마당’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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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집에서 튀김조각을 물고 나오는 어미고양이 여울이.

그러나 며칠 전 여울이는 여섯 마리 아기고양이를 데리고
길가의 천막집으로 이사를 왔다.
주황대문집 할아버지가 고양이를 내쫓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주황대문집 마당에는 생후 4~5개월은 넘은 듯한 황구와 백구를 각각 한 마리씩
데려와 묶어 놓았다.
강아지가 두 마리나 마당에 상주하면서
더는 고양이가 이곳에 발붙일 수 없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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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물고 있던 것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새끼 한 마리가 먹어치우자 다른 녀석들이 냥냥거리며 어미에게 먹이를 내놓으라 보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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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이가 새끼들을 옮긴 길가의 천막집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울이와 노을이가 머물러 살던 친정집 같은 곳이다.
급식장소인 개울집에서도 훨씬 가까운 거리에 있다.
여울이는 오늘도 배고픈 아기고양이들을 위해 개울집 부엌에서
튀김조각을 하나 물고 나왔다.
보기에도 그건 매우 작고 아기고양이 혼자서 먹기에도 부족한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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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집 둥지 밖에 나와 어미를 기다리는 아기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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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곳없이 여울이는 그것을 물고 개울집 봉당을 지나
찻길을 가로질러 천막집에 도착했다.
어미가 입안에 무언가를 물고 나타나자 천막집 안에 얌전히 숨어 있던
아기고양이들이 일제히 밖으로 나와 냥냥거리며 아귀다툼을 벌였다.
여기저기서 나도 한 입만 하는 표정으로
아기고양이들이 어미의 입만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고등어무늬를 한 녀석이 운 좋게 그것을 한입에 덥석 물고
씹을 틈도 없이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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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마리 아기고양이가 뛰어놀던 주황대문집 마당은 이제 이렇게 황구와 백구의 차지가 되었다(위). 얼마 전 여울이와 새끼가 바깥 세상을 내다보던 대문 밑으로 이제는 백구가 고개를 들이밀고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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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이가 또 급식소를 다녀오겠구나, 싶었는데,
녀석은 오늘 영업은 여기서 끝이라는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먹이를 얻어먹지 못한 새끼들은 어미 얼굴에 주둥이를 부비고
더러는 불쌍한 눈빛을 한 채 어미에게 냥냥거렸다.
어미는 새끼들에게 풍족하게 먹이를 물어다주지 못하는 처지가 답답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들은 그저 배가 고파서 서럽게 냥냥 울었다.
어미 노릇 하기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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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나와 바깥 동정을 살피는 아기고양이(위). 천막집 둥지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아기고양이(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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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먹이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새끼들은 빨리 먹을 것을 가져오란다.
여울이는 새끼들의 등쌀에 못이겨 결국 호박덩굴 속으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하지만 어미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별로 쉬지도 못하고 여울이는 다시 둥지를 나와 콩밭 이랑 사이를 걸어간다.
이제 어디 가서 밥을 구한담!
어미가 둥지를 비운 사이 아기고양이들은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어미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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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이 궁금해, 카메라도 궁금해, 모든 것이 궁금한 아기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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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잠시 후 여울이는 빈손으로 타박타박 둥지로 돌아왔다.
새끼들은 왜 아무것도 없는 거냐고 어미를 원망하며 냥냥 울어댔다.
다행히 오늘은 여울이네 새끼들과 여기서 200여 미터는 떨어진 가만이네 새끼들을 위해
특별히 고양이캔을 챙겨왔다.
물론 풍족하게 가져오지는 못했다.
네 개의 캔 중에 두 개의 캔을 따서 천막집 앞에 놓아두자
새끼들이 하나 둘 캔 앞으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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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장아장 둥지 바깥을 돌아다녀보는 아기고양이의 뒷모습.

여울이가 한 입 맛을 보자 그제서야 새끼들도 캔에 머리를 박고
그야말로 먹이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 입이라도 맛본 새끼들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야, 하는 표정이다.
여울이는 한 입 맛만 보고는 새끼들에게 밀려나
뒤에서 입맛만 다셨다.
어미 노릇 하기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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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랑 사이로 먹이를 구하러 가는 어미고양이의 뒷모습.

힘들어도 새끼들에겐 힘든 티도 못내고,
맛난 것이 있어도 마음 놓고 그것을 먹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이 녀석들이 커서 제 어미에게 맛난 거 한 입 물어다주지도 않을 텐데...
어미는 어미라는 이유로 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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