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개의 우정은 어디까지?
흔히들 고양이와 개의 관계를 앙숙 내지는 적대관계로 말한다.
개가 고양이의 천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개가 고양이를 공격하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목격했다.
이사를 오기 전 유기견 몇 마리가
한 마리의 고양이(희봉이)를 사냥하듯 공격하는 것도 본 적이 있으며,
개에게 쫓겨 은행나무로 피신해 올라간 고양이(동냥이)를 본 적도 있다.
"우리 제법 잘 어울리죠?"
얼마 전에는 이웃마을 여울이와 노을이가 집에서 키우는 커다란 개의 습격에
황급히 몸을 피하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기도 했다.
한번은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개 주인(부부가 함께)이
차밑에 얌전하게 앉아 있던 아기고양이를 보자 ‘가서 물어!’ 하면서
목줄을 풀어주는 것을 보고 황급히 뛰어가 제지한 적도 있다.
그동안 나는 고양이를 공격하는 개를 너무 많이 보아온 터라
개를 고양이의 적으로만 생각해 왔다.
고양이와 개는 서로 친해질 수 없는 관계로만 여겨왔다.
"내가 니 에미다." 이런 걸 '개 같은 어미'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요즘 고양이와 개가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고,
실제로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고 있다.
우리 동네 전원주택에 사는 개와 고양이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언젠가 이 집의 개와 고양이에 대한 사연을 짧게 소개한 적이 있지만,
다시 한번 소개하자면 이렇다.
언젠가 이 집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새끼들을 물어다 놓았다고 한다.
집주인인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가보니
문밖에 젖도 안 뗀 아기고양이들이 오종종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고양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침을 삼키며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개.
그 아기고양이를 거둔 것은 이 집에 사는 처녀개였다.
시집도 안 간 암컷 개는 새끼들에게 제 자식처럼 젖을 먹이고 품안에서 키웠다고 한다.
기른 정이 있어서일까.
이 집의 개는 낯선 사람이 마당에 들어서면
우선 고양이의 앞에서 보호자 노릇을 하며 컹컹거린다.
고양이들 또한 개집으로 숨거나
개 뒤에서 동정을 살피곤 한다.
"가만히 좀 있어봐봐. 내가 그루밍 좀 해 줄게."
한번은 내가 특별제조한 캔밥을 전원고양이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는데,
개는 고양이들이 다 먹을 때까지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고양이들이 하나 둘 자리를 벗어나자
그제서야 개는 고양이가 남긴 밥을 먹어치웠다.
이웃마을의 덩달이와 두 마리의 강아지도 못말리는 우정을 나누는 사이다.
덩달이가 사는 마당에는 본래 덩달이와 봉달이, 개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곳에 두 마리의 강아지가 태어났고,
어느 정도 걷게 되면서 녀석들은 줄기차게 덩달이의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얌마...사진 찍을 땐 앞에서 가리지 좀 마!"
아마도 어미 개는 목줄에 묶여 있어
행동이 자유로운 덩달이를 언니처럼 따라다닌 것으로 보인다.
그 강아지들 이제 거의 몸집이 덩달이 못지않게 커졌는데도
여전히 덩달이만 보면 핥아대고 올라타고 짓누르고 물어뜯고 장난을 친다.
성격 좋은 덩달이는 그런 강아지들의 장난을 다 받아내고 있다.
겉으로는 귀찮아하면서 은근히 녀석들의 재롱을 즐기기까지 한다.
2년 전 라오스에 갔을 때,
숙소 인근의 사원에서 개와 아기고양이가 사이좋게 어울려 사는 모습을 보고
고양이와 개는 처음부터 ‘웬수’가 아니었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모냐...이 냄샌?"
또 다른 사원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보고
사원이니까 그런가, 하고 의심을 하기도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던 거다.
고양이와 개는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고, 우정을 나눌 수 있다.
더욱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고양이와 개는 훨씬 그럴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같은 경우가 분명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다.
아직도 많은 고양이들은 많은 개들에게 공격과 습격을 당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는 거
오히려 낯선 고양이보다 함께 자란 개를 더 사랑하는 고양이도 있다는 거
고양이를 제 자식처럼 여기는 개도 있다는 거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다는 거
그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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