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남매 아기냥의 유랑묘 생활
몇 달 전 집앞에 고등어무늬 어미냥 한 마리가 나타나
우웽우웽~ 배고픈 울음을 울고 있었다.
한두 번 본 적이 있는 어미냥이긴 했지만,
이곳이 영역이 아니어서 그동안 먹이 줄 일이 없었다.
그런데 녀석이 어찌나 간절하게 목청껏 울던지
이건 숫제 시끄러워서 먹이를 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 고양이 캔 하나를 들고 나와
차 밑으로 먹이를 밀어넣어 주었다.
유랑묘 생활을 하는 5남매 아기냥 중 막내로 여겨지는, 가장 순진하게 생긴 아기냥.
순식간에 어미냥은 캔 하나를 다 비우고
또다시 우엉우엉거렸다.
배는 불룩해서 거의 땅바닥에 닿을 듯했고,
젖꼭지도 부풀어 금세라도 새끼를 낳을 듯이 보였다.
유랑묘 생활을 하는 5남매 아기냥과 어미냥과 보모냥. 무려 7마리 고양이 대가족이 유랑묘 생활을 한다.
그날 이후로 어미냥은 하루도 빠짐없이 집앞에 와서 우엉거리며 먹이동냥을 했다.
그렇게 거의 한달을 녀석에게 나는
사료에다 고양이캔을 갖다 바쳤는데,
어느날부턴가 어미냥이 보이지 않았다.
컨테이너 박스 밑에서 먹이를 먹고 기운이 난 아기냥 5남매가 바깥으로 나와 장난도 치고, 놀고 있는 중이다.
새끼를 낳으러 간 게 분명했다.
거의 보름 넘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미냥이 나타났다.
불룩하던 배가 가라앉아 있었지만, 젖꼭지는 늘어져 여전히 땅에 닿을 듯했다.
한 아기냥이 먹이를 먹고 있는 다른 아기냥의 등에 올라타며 말타기 놀이를 하고 있다.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려면 잘 먹어야 하는 건
길고양이도 마찬가지다.
나는 또 그렇게 보름 가까이 어미에게 먹이를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열흘 전쯤 어미냥이
다섯 마리의 아기냥과 한 마리의 보모냥을 데리고 집앞 컨테이너 박스에 나타났다.
호기심 많은 아기냥 두 마리가 컨테이너 박스에서 나와 바깥 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같이 온 한 마리의 보모냥은 어미냥이 약 6개월 전에 낳은 새끼로
여적지 독립을 하지 않고 지내는 마마보이(마마걸인가?)다.
5남매 아기냥에게는 큰형 아니면 큰누나가 되는 셈이다.
사실 이 녀석들의 둥지는 이곳에서 100여 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데,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새끼들을 이끌고 어미냥은 모험같은 먹이동냥을 온 것이다.
배가 부른 아기냥들이 컨테이너 박스 밖으로 나와 놀고 있다.
나는 집에 있던 고양이캔과 파우치를 날라다
컨테이너 박스 밑으로 넣어주었다.
이 고양이캔과 파우치는 그동안 내가 블로그에 올린 <길고양이 보고서>를 보고
한 네티즌이 매달(벌써 7개월째) 두 박스씩 보내온 것이었다.
(다시 한번 그 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컨테이너 박스 앞 벽돌 위에 앉아 있는 순진이 아기냥.
먹이를 먹고 기운이 난 아기냥들은 햇볕 좋은 양지녘으로 나와
일광욕도 하고, 장난도 치고, 나무도 타면서 놀았다.
그런데 세상에는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 초등학생이 골목을 지나다 “고양이다” 하면서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5남매 아기냥들 중 이 녀석과 뒤로 살짝 보이는 턱시도 녀석이 가장 호기심이 많고 장난꾸러기다.
옆에 있던 다른 초등학생은 “야, 그러지 마!” 하고 말렸다.
나는 밖으로 나가 돌을 집어던진 초등학생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타일렀다.
이건 아주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하다.
그날 또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 벌어졌다.
장난꾸러기 턱시도 코점이가 컨테이너 박스 앞을 걸어나오고 있다.
바깥이 소란해 창문을 열어보니, 어떤 멀쩡하게 생긴 청년 한 명이
컨테이너 박스 밑으로 작대기를 쑤시며 아기냥들에게 해코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또다시 밖으로 나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청년은 그저 아무 말없이 작대기를 팽개치고는 사라졌다.
어미냥과 순진이, 카만코 순진이.
이 사건은 아기냥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과 불안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킨 모양이다.
그 때부터 아기냥들은 절대로 컨테이너 박스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어미냥은 그날 저녁 아기냥을 데리고
다시 자기네 둥지로 돌아가 닷새 쯤 아예 올라오지 않았다.
순진이와 까만코 순진이와 보모냥 이옹이.
그러나 먹이를 구할 수 없는 어미냥은 어쩔 수 없이 5남매 아기냥의 배고픔을 달래주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집앞 컨테이너 박스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눈치가 보여 한동안 길고양이 먹이주기를 중단했던
옆집 세탁소에서도 5남매 아기냥 살리기에 동참,
사료와 캔을 어미냥과 아기냥들에게 넣어주기 시작했다.
보모냥과 순진이, 코점 삼색이.
그러나 녀석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일은
여간 눈치가 보이는 일이 아니어서 주변에 혹시 다른 사람이 없는가,
살핀 뒤, 몰래몰래 넣어주어야만 했다.
더불어 아기냥들에게 해코지하는 사람들은 없는가,
감시조 역할까지도 내가 도맡아야 했다.
5남매 아기냥의 어미냥. 모성애가 지극한 편이다.
태어난 지 이제 한달 정도 된, 집앞에 온지 이제 열흘 정도 된
아기냥들은 2~3일에 한번 꼴로 둥지와 컨테이너 박스를 오가며
그렇게 유랑묘 생활을 하고 있다.
어미냥과 아기냥들에게는 이곳이 먹이가 있는 곳이지만, 너무나 위험한 곳이고,
둥지가 있는 곳은 안전한 곳이긴 하지만 먹이가 거의 없는 곳이므로
당분간 녀석들의 유랑묘 생활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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