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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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콩밭에 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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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아저씨 또 왔어!"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다섯 마리 아기고양이를 돌보는 여울이는 심신이 지쳐가고 있다. 세상의 초보엄마냥이 다 그렇듯 여울이도 하루하루가 노심초사다. 혹시나 새끼들이 차도에 뛰어들지 않을까, 둥지 앞 텃밭에 나갔다가 쥐약을 놓겠다는 아줌마에게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식당 큰개에게 물려가지나 않을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어미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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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쫌 있음 말복인데... 뭐 맛난 거 좀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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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섭씨 30도를 웃도는 폭염의 날들을 견디는 것도 고민이다. 아무리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는 고양이라 해도 요즘 같은 불볕더위는 참을 수가 없다. 사실 둥지에 외롭게 남겨진 아기고양이가 폭염으로 죽는 일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여울이네 둥지는 폐목조 패널을 천막으로 꽁꽁 둘러싼 곳으로, 은신하기에는 더없이 좋고 비를 피하기에도 괜찮은 곳이지만, 무더위만큼은 견딜 수가 없는 곳이다. 사방에 천막을 둘러쳤으니 요즘 같은 날씨에 그 안은 찜질방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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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더운 날엔 콩밭 그늘이 역시 최고야..."

때문에 여울이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이면 둥지를 벗어나 인근의 콩밭으로 피신을 한다. 다섯 마리 아기고양이도 어미를 따라 콩밭에서 한낮을 보낸다. 이 콩밭으로 말할 것 같으면, 1년 전 여울이와 개울이, 노을이가 주로 머물며 장난을 치고 낮잠을 자던 바로 그 곳이다. 여울이의 어미였던 까뮈도 가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녀석들에게는 이곳이 정자그늘처럼 시원한 여름 휴게소인 셈이다. 둥지 바로 앞 텃밭에도 쉴만한 그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은 쥐약을 놓겠다고 협박한 아줌마의 땅이다. 녀석들도 그것을 아는지 이제는 그 텃밭을 얼씬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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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도 좀 먹어보자..니네 입만 입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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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녀석들은 텃밭과 콩밭 사이의 밭고랑을 화장실로 사용한다. 내가 보는 앞에서도 녀석들은 여러 번 그곳에다 볼일을 봤다. 내가 본 바로는 녀석들이 결코 텃밭을 파헤치고, 작물을 망가뜨리지 않았다. 새끼들이 더 어렸을 때 텃밭을 파헤치고 볼일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후에 여울이가 새끼들에게 그곳은 안돼, 라고 주의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여울이와 다섯 마리 아기고양이는 텃밭을 지나쳐 콩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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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고맙수! 자주 자주 맛난 거 좀 가져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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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더위와 양육에 지친 여울이가 안돼 보여 갈 때마다 고양이캔을 따로 챙겨가곤 한다. 아기고양이들에게는 캔에 버무린 키튼용 사료를 부어주고, 여울이는 따로 불러 캔을 들이미는 것인데, 정작 그 캔은 새끼들 차지가 될 때가 다반사이다. 그저 여울이는 캔의 맛만 한입 볼 뿐, 새끼들이 차지하고 나면 옆으로 비켜나 입맛을 다시며 구경만 한다. 새끼들이 콩밭에 들어가 사료를 먹을 때도 여울이는 콩밭 앞으로 나와 지킴이 노릇을 한다. 누가 엄마 아니랄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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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삼촌...왜 내가 싼 거 확인하는 건데?"

텃밭에 쥐약을 놓겠다는 협박이 있고 난 뒤부터 나는 자주 녀석들이 머무는 콩밭을 찾곤 했다. 말 그대로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다. 콩밭에 가서 녀석들이 잘 있나, 내 눈으로 확인을 해야 마음이 놓였다. 여울이네 아기고양이들도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녀석들은 따로 둥지 앞에서 사료 급식을 받고 있으나, 내가 가져가는 고양이캔과 캔밥을 기다리는 눈치다. 여울이는 아예 내가 인근을 지날 때면 콩밭 언저리에 나앉아 으냐앙거리며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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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맛있다. 이런 거 만날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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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그곳에 있든 말든
날씨가 맑든 흐리든
콩밭의 콩포기는 무럭무럭 잘도 자란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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