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의 무덤에서 무덤의 자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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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의 무덤에서 무덤의 자궁까지"

-- 조셉 캠벨 <세계의 영웅신화>(대원사)


조셉 캠벨은 우리에게 <신화의 힘>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세계의 영웅신화>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단언컨대 이 책은 조셉 캠벨의 신화서 중에 단연 으뜸인 책이다. 물론 거기에는 이윤기라는 뛰어난 역자의 힘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프롤로그'에서 조셉 캠벨은 "자궁의 무덤에서 무덤의 자궁까지 우리는 완전한 순환 주기를 산다. 그것은 꿈의 본질처럼 눈앞에서 곧 녹아버릴 견고한 물질의 세계를 향한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흐름이다."라고 적고 있다.

사실 신화라는 것이 계절의 순환이나 인생의 흐름과 다를 바가 없어서 소생과 소멸의 순환주기 속에 웅크려 있다는 얘기다. 그는 신화를 해석하면서 자주 프로이트와 융의 이름을 들먹이는데, 그는 많은 신화에 있어 융에 좀더 근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즉 집단 무의식이 신화를 만드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꿈은 인격화한 신화고 신화는 보편화된 꿈이며, 꿈과 신화는 상징적이되 정신 역할의 동일한 일반적 시각에서 보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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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화에서는 문제와 해결책이 모든 인류에게 직접 뚜렷이 제시되는데 비해, 꿈속에서는 꿈꾸는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는 언급도 융에 그 맥락이 닿아 있다. 그가 말하는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은 보편적인 인물은 분명 아니다. 인간의 꿈의 현현인 셈인데, 영웅이 치르는 모험의 궤도는 인간의 통과제의적 양식과 대동소이하다. 즉 분리-입문-회귀의 순환을 따른다는 것인데, 영웅은 평범한 삶에서 어느날 결정적인 사건이나 후문을 듣고는 고난과 역경의 모험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는 힘겨운 상대들을 연속적으로 대면하여 가까스로 물리친 뒤 현실로 되돌아온다는 것이 영웅신화의 보편적인 줄거리라는 것이다. 다만 인간계의 승리와 신화계의 승리에 있어 차이점은 인간은 개인을 위해 싸우지만, 신화에서의 영웅은 이 세계를 위해 싸운다는 점이 다르다. 영웅과 더불어 또다른 신화의 주인공은 종종 이 세계의 중심에서 자라는 '생명나무'(우주나무)이다. 캠벨은 이 나무가 이 세계의 보이지 않는 원천이자 에너지의 중심인 '세계의 배꼽' 즉 '옴파로스'에서 자라는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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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신화에서 환웅이 신단수에 내린 것도 그 나무가 있는 곳이 바로 '세계의 배꼽'이기 때문이다. 캠벨은 세계의 배꼽을 연속적인 창조의 상징이자 존재의 근원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세상의 선과 악도 이 구멍에서 비롯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신화들은 실로 다양하다. 일본과 중국은 물론이고 페루와 티베트, 인도와 유럽의 여러 나라 신화가 총망라되어 있다. 캠벨의 지적 모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자의 번역도 뛰어났지만, 신화에 관련된 책을 쓰면서 이리도 문학적일 수 있는가, 라는 감탄마저 든다.

아마도 이는 풍부한 서사시의 인용에서도 드러나듯 그가 서사시의 해석에 무척 관심을 두고 있었던 탓일 게다. 가령 이런 문장을 보자. "원초적인 심연의 휴경지로 남은 그녀의 자궁은 만반의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일찍이 아무것도 없음을 살찌웠던 근원적인 권능을 부른다." 우주적 여성성을 그는 신화적이기보다는 이렇듯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화에 관한 한 이만한 책은 사실 무소부재하다. 그리하여 그가 '에필로그'에서 말하는 "창조적인 영웅을 이끌고 구원하여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아니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 영웅이다."라는 말은 내 속에 잠재한 순수한 영웅성을 '상징의 감옥'에서 불러오는 것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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