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고양이와 함께한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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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고양이함께 한 1년

 

전원고양이는 전원주택이 영역이라서 다행이다.

전원고양이는 전원주택 마당가에 나무 울타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 울타리가 너무 높지 않아서 다행이다.

마당 한가운데 감나무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 감나무에 올라가도 할머니가 혼내지 않아서 다행이다.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어서 다행이다.

봄이면 마당 화단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나서 다행이다.

아침이면 달걀 프라이, 저녁이면 어묵을 내놓는 할머니가 있어서 다행이다.

잊지 않고 고양이 사료를 퍼주는 할머니가 있어서 다행이다.

고양이를 예뻐하고 고양이를 가여워하는 할머니가 있어서 다행이다.

아기고양이에게 젖을 먹이고 엄마처럼 돌보는 개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곳에 엄마, 할머니, 형, 누나, 삼촌, 이모, 형제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곳에서 맘대로 낮잠도 자고, 그루밍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전원고양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내가 전원고양이를 만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작년 이맘때쯤 나는 녀석들을 처음 만났다. 산책이나 하려고 소나무 동산으로 천천히 올라가는데, 동산 아래 전원주택 마당에 고양이가 대여섯 마리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사실 처음 전원고양이를 만나서 사진을 찍자고 했을 때, 집주인 할머니는 탐탁지 않게 여겼더랬다. 하긴 낯선 사내가 불쑥 대문 앞에서 고양이 사진 좀 찍어도 되느냐고 했으니, 기꺼울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두 번 세 번 찾아가 사료를 전해드리고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란 책도 한권 건네자 할머니는 선뜻 마당 출입을 허용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처음 전원주택에 들렀을 때 전원고양이 식구는 열네 마리 정도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1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의 식구는 열다섯 마리 정도다. ‘정도’라고 표현한 것은 밤에만 찾아오는 녀석도 있고,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나타나는 녀석도 있으며, 가끔은 꽤 오래 모습을 보이지 않는 녀석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동안 이곳에서 낳은 아기고양이 식구를 두 번이나 만났지만, 전체 식구는 늘어나지 않고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밀도를 유지했다. 아기고양이가 태어난 수만큼 늙은 고양이는 이곳을 떠났다. 아기고양이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 녀석들은 스스로 척박한 영역으로 떠났다. 흔히 고양이 혐오자들은 말한다. 한 마리의 어미고양이가 있다면, 다섯 마리의 새끼만 낳는다고 해도 여섯 마리가 되고, 여섯 마리 중 절반의 암컷이 또 새끼를 낳고 하다보면 결국에는 고양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말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논리는 길고양이의 생존율과 수명을 고려하지 않은 통계학적 오류일 뿐이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지금쯤 전원주택은 엄청난 고양이떼로 넘쳐났어야 한다. 이것은 길고양이의 수명이 3년에 불과하고 생존율 또한 30%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인 것이다. 실제로 전원고양이 중 한 마리는 다섯 마리의 아기고양이를 낳은 적이 있지만, 무슨 일인지 단 한 마리의 생존묘도 없이 모두 죽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먹이가 풍부하고 거처가 안전하다고 해서 모든 아기고양이가 생존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 고양이 밀도가 문제가 된다면, 인도적인 TNR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문제는 지금 현재 지자체에서 벌이고 있는 TNR 사업이 업자와 사업주체 간의 유착으로 비인도적 TNR 사업으로 변질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상당수의 길고양이 애호가들조차 순진하게 지자체의 TNR 사업을 유일한 길고양이 대책으로 믿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제보받은 바로는 상당수의 지자체가 TNR 사업을 명목으로 무차별(아기고양이나 임신한 고양이는 포획해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하게 길고양이를 포획해서 중성화수술을 시키거나 중성화수술 후 제자리방사는커녕 야산에 한꺼번에 풀어놓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심지어 일부 지자체에서는 업자들이 불법으로 중성화수술을 시킨 뒤 집단으로 고양이를 안락사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내가 TNR을 찬성하면서도 지자체의 TNR 사업을 반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튼 전원고양이는 스스로 묘구밀도를 조절해 왔다. 어쩌면 이것이 전원주택 할머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녀석들의 자구책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떠날 때가 되어 떠날 줄 아는 녀석들의 행동은 갸륵할 따름이다. 그런 고양이를 지금까지 보살펴온 할머니도 그저 아름답다. 전원주택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할머니의 형편이 이 많은 고양이를 돌볼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 할머니는 말한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어묵도 먹이고 남는 밥도 먹이면서 그렇게 사는 거죠 뭐. 며칠 전에는 글쎄 사료가 똑 떨어져서 한밤중에 고양이들이 문 앞에서 그렇게 울더라구요. 그래서 내 그랬어요. 내가 해줄 수 있는 만큼은 해주자. 남은 우유도 주고, 멸치도 주고, 계란 프라이도 해주고...”

 

 

사실 근래에 나는 전원주택에 매주 사료 한 포대씩을 배달해 왔는데, 하필이면 최근에 주문한 사료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한주를 거르고 말았다. 공연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나는 이곳에 사료를 배달하고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할머니는 갈 때마다 차를 내오고 먹을거리를 내오신다. 한번은 우리 아들이 백일이 되었을 때인데, 할머니가 손수 뜨개질을 해서 우리 아기 옷 한 벌을 떠 주었다. 모자는 물론 양말까지 풀세트로 옷을 떠주었다. 또 한번은 간장과 된장에 절인 깻잎을 정성스레 싸주는 거였다. 뿐만 아니라 지난 설날에는 선물이 남았다며 포도씨유와 올리브유 세트를 한 상자 선물로 주는 게 아닌가.

 

 

따지고 보면 나는 전원고양이 사진도 찍고 책에도 싣고 해서 오히려 일주일에 사료 한 포대로도 미안한 생각이 드는데, 할머니는 또 할머니대로 그것이 너무 고마웠던 모양이다. 이래저래 전원고양이를 만나서 정말로 다행인 것은 나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지구의 한 귀퉁이, 궁벽한 시골에도 전원주택 할머니처럼 고양이를 긍휼히 여기고 보살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할머니의 보살핌 아래 전원고양이는 그 어떤 고양이보다 명랑하다는 것. 전원주택 마당에도 어느덧 봄이 와서 지금은 전원고양이 녀석들 하나같이 봄 햇살에 나른나른 노곤한 묘생을 핥고 있는 중이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 트위터:: @dal_lee

명랑하라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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