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희망이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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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위기인가 기회인가


국내 주류시장은 맥주와 소주가 시장을 거의 양분하고 있다. 2005~2007년까지 주류시장의 점유율은 맥주가 50% 안팎, 소주가 30% 이상으로 두 가지 주종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시장을 두고 위스키와 와인(3~5%), 막걸리, 전통주(2% 미만)가 각축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주류시장에서 와인의 판매율은 25% 정도의 급격한 성장세를 기록한 반면 전통주는 40% 정도 판매량이 급감했다. 와인은 칠레산 중저가 와인이 ‘와인의 대중화’를 이끈 반면, 전통주는 주원료(찹쌀, 매실 등)의 가격 상승 악재까지 겹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일본의 사케까지 전통주 시장을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다. 소주와 맥주는 그렇다치고 위스키와 와인에 밀리고, 자칫하면 사케에까지 치이게 생긴 전통주는 지금이 가장 큰 위기에 처해 있음이 분명하다.



전통주 중에 발효주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한산 소곡주.


이런 위기를 조장한 것은 사실상 주세법에 있다는 게 전통주 업계의 논리다. 약주와 과실주를 포함한 전통주의 출고량은 평균 24~38kl로 대규모 주류업체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함에도 주세는 똑같이 약주가 30%, 과실주가 70% 이상 세금을 납부해온 것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끊임없이 주세법 개정을 촉구해왔고, 드디어 지난 해 2007년 12월 28일 민속주와 농주를 포함한 전통주의 주세 인하와 지원대상 전통주의 범위 확대 등을 담은 주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동안 전통주 업계의 오랜 숙원사업이기도 했던 이 새로운 주세법은 올 2008년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가게 된다.


시중에서 팔리는 몇 가지 전통주.


주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국내 전통주 업체들은 올 7월 1일부터 기존에 내오던 세금의 50%를 감면받게 되는데, 연간 생산량이 500kl 이하 발효주 생산업체와  250kl 이하 증류주 생산업체가 이 감면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적으로 소규모 생산이 가장 많았던 한산 지역 소곡주와 고창 복분자주 등의 발효주와 안동 소주, 문배주, 이강주 등이 모두 감면 대상에 든다. 그러나 백세주 같은 대규모 생산을 해온 국순당과 매실주를 생산해온 일부 업체는 연간 생산량이 감면 생산량을 넘어 세금 감면 혜택에서 제외된다. 이를 두고 소규모 전통주 생산업체에서는 환영하고 있지만, 대규모 전통주 생산 업체들은 ‘전시행정’이라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대규모 전통주 생산 업체가 세금 감면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두고 정부 관계자는 WTO(세계무역기구) 내국인 대우조항을 위반하는 것이고,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규정에도 위배되는 행위라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업계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EU 국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밀주로 규정하고 있는 소규모 양조업체와 대규모로 생산되는 지역 특산주(와인과 맥주)에 대한 세금 감면조항이 아예 명문화되어 있다. 일반 주류업체의 세금에 비해 지역 전통주에 훨씬 낮은 주세를 적용함으로써 사실상 전통주를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정부에서는 지나치게 WTO 눈치를 본 것이고, 지나치게 미국과의 FTA를 의식한 것에 다름아니다.



전통주 중에 증류주의 왕이라 할 수 있는 진도 홍주를 소줏고리로 내리는 모습.


어쨌든 늦은 감이 있지만, 주세 인하를 골자로 한 주세법 개정안 통과는 일단 환영할 일이다. 누군가는 이번 주세법 개정안 통과가 전통주의 기회라고 말한다. 그동안 위스키와 와인에 밀려온 주류시장에서 전통주가 다시 재도약을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과연 그럴까. 국제 상거래 위반을 핑계로 국내 전통주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업체들을 세금 감면 대상에서 모두 제외한 이상 전통주의 부활은 기대할 수가 없다. 여전히 전통주는 비상이고, 위기이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다양한 가양주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일제시대와 새마을운동 시절의 밀주단속으로 600여 종류가 넘었던 가양주(밀주)의 전통은 사양길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어렵게 그 맥을 이어오는 곳들이 많다. 백가지 꽃으로 빚었다는 백화주, 보약으로 불러도 좋을 죽력고, 대대로 종갓집의 손맛을 이어온 교동법주며 연엽주며 진양주가 있고, 발효주의 왕이라 할만한 한산 소곡주와 증류주의 대명사 진도 홍주, 명주의 맥을 지키는 문배주와 이강주, 안동 소주도 있다. 이밖에도 금산 인삼주, 계명주, 구기자주, 백일주, 사삼주, 신선주, 제주 고소리술과 오메기술 등 지역마다 특산주와 명주가 널려 있다.



발효 100일만에 소곡주를 뜨기 위해 용수를 박아넣은 모습.


소규모로 생산돼 온 지역의 특산주와 가양주는 그야말로 ‘술이 예술’인 것이 많지만, 일반 대중들이 몰라서 찾지 않는 술이 상당수에 이른다. 주세법이 개정된다고 한들, 일반인들이 이런 명주와 예술의 술을 찾아서 마시기란 어려운 일이다. 지자체와 농림부 등에서 이런 숨겨진 우리의 비주와 명주를 찾아내고 알리는 노력(유럽에서는 지역 특산주에 대한 홍보물 제작과 페스티벌이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이 없다면, 전통주의 위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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