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촬영한 섬 5곳 여행하기
TV를 잘 보지 않는 내가 가끔씩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1박 2일>이다. 공교롭게도 <1박 2일>에 나온 섬 가운데 다섯 곳은 내가 모두 다녀온 곳들이었고, TV에 나오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 주 <1박2일> 글로벌 특집(8월 16일)에 나온 청산도는 무려 내가 다섯 번이나 여행한 곳이기도 하다. 2007년 12월 16일에는 가거도 편이 방영되었고, 2008년 3월 9일에는 우도 편이, 2008년 4월 13일에는 여서도 편, 2008년 11월 30일에는 외연도 편이 방영되었다. 모두 내가 두 번 이상 다녀온 섬들이다. 더러는 이미 소개한 섬들도 들어 있다.
청산도 항구에서 바라본 햇무리 풍경.
1. 청산도: 구불구불 황토길과 논두렁이 어울린 곳
강진 지나 해남. 해남에서 다시 그 옛날 청해진을 두고 바다를 호령했던, 장보고의 원혼이 살아 숨쉬는 완도에 이르자 짭쪼롬한 갯냄새가 먼저 코끝에 감겨온다. 이름만 들어도 시원한 청산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들어 있는 섬으로, 완도항에서 뱃길로 40여 분 거리에 있다. ‘청산’이란 이름답게 온통 푸른빛으로 물든 섬! 요즈음 들어 청산도는 일반인에게 영화 <서편제>의 무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서편제>에서 유봉 일가 부녀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돌담을 따라 구불구불한 황토길을 신명나게 걸어가던 곳이 바로 청산도 당리라는 곳이다. 이곳은 드라마 <봄의 왈츠>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당리 언덕에서 바라본 청산도의 푸른 바다와 하늘 풍경.
당리는 항구가 있는 면 소재지 도청리에서 약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마을에는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선 고운 돌담길과 다랑논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마치 그 곳의 돌담길과 다랑논의 굴곡은 진도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을 닮아있는 듯, 이리 휘어지고 저리 꺾어지며 마을을 에두른다. 당리를 비롯해 읍리와 도락리, 부흥리 등 청산도의 마을에서는 섬 특유의 ‘구들장논’도 만날 수 있다. 구들장논이란 산비탈이나 구릉에 마치 구들장을 놓듯 돌을 쌓아 먼저 바닥을 만든 뒤, 그 위에다 다시 흙을 부어 다져서 논을 일군 것으로, 옛날 척박하고 비탈진 땅을 개척하여 기름진 땅으로 가꾼 섬사람들의 슬기와 개척정신이 배어 있는 삶의 유산이라 하겠다.
청산도의 구들장논은 대부분 산비탈을 일구어 다랑논 형태로 만들었기 때문에 경운기나 그 밖의 농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논이 상당히 많다. 어쩔 수 없이 소와 사람의 힘으로 논갈이를 해야 하는데, 흙의 두께가 쟁기날의 깊이보다 얕아서 ‘배미를 딸 때’(쟁기질)도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불편한 조건 속에서도 청산도 농부들은 이모작 농사를 보통으로 해낸다. 청산도에 보리밭과 마늘밭이 많은 까닭도 그 때문이다. 구들장논과 황토길이 아름다운 당리를 지나면 읍리에서 ‘독배기’라 불리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고인돌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에 따르면 동쪽에 있는 것이 아비 무덤, 서쪽에 있는 것은 아들 무덤이며, 부자 무덤 앞에 자리한 것이 어미 무덤이라고 한다. 특이한 것은 아비 무덤과 아들 무덤 사이에 너댓 개의 돌 무더기가 보이는데, 이는 아비와 아들의 영혼이 서로 드나드는 통로라고 한다. 고인돌 옆에는 마애불이 음각으로 새겨진 하마비를 볼 수 있다.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
청산도에는 아직 초분의 전통이 남아 있다. 도청리에서 지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자리한 이 초분은 사방 나뭇가지로 담장을 쳐놓았는데, 이는 소나 가축의 접근을 막기 위함이다. 현재 청산도에는 이 곳 말고도 3기의 초분이 더 있다고 한다. 초분을 볼 수 있는 지리는 해수욕장으로도 유명한데, 신흥리 해수욕장과 더불어 한적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청산도의 운치를 더해주는 곳은 진산리 갯돌밭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곳의 갯돌밭은 청산도 바닷가에 있는 7군데의 갯돌밭 가운데 가장 곱고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며, 바닷가에는 달걀만한 갯돌부터 주먹만한 갯돌까지 동글동글한 갯돌 무더기가 잔뜩 깔려 있다. 파도와 갯돌이 부딪치며 내는 맑은 소리는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2. 우도: 밭돌담과 해안풍경이 아름다운 섬
성산포에서 4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우도는 말 그대로 섬의 모양이 머리를 들고 누워있는 소를 닮았다고 예부터 ‘소섬’이라 불렀다. 그 소섬의 머리가 바로 우도봉, 즉 쇠머리오름이며, 그 꼭대기에는 마치 소뿔이나 되는양 우뚝 등대가 솟아 있다. 또한 쇠머리오름을 이루는 해안절벽 아래에는 소의 콧구멍에 해당된다는 ‘동안경굴’까지 있다. 섬이 소를 닮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도에서는 “쉐나 행상 시꾸민 궤기 나끈다”는 말이 있다. 소나 행상을 꿈에 보면 큰 고기를 낚는다는 뜻이다. 또 “쉐똥을 주서 베민 거펑뗀다”는 속담도 있다. 꿈에 소똥을 주우면 그만한 전복을 딴다는 것이다. 둘 다 소와 관련이 돼 있으며, 해녀 또는 어부와 관련이 있는 말이다.
<1박2일>에도 나왔던 우도 서빈백사 해수욕장.
아무튼 우도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쇠머리오름은 영화 <화엄경>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한데, 봉우리가 끝나는 곳은 직벽이나 다름없는 바위절벽을 이루고 있다. 이 바위절벽은 마치 자연스럽게 빗금을 그어놓은 듯 아름답고 거대한 단층을 이루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따라서 우도에서는 이 바위절벽(우도8경 중 하나로 ‘후해석벽’이라 함)을 볼 수 있는 검멀레(제주에서는 검은 모래를 일러 검멀레라 함) 해안이 최고의 관광코스로 손꼽힌다. 하지만 좀더 우도를 알고 나면, 우도에 그보다 더한 아름다움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우도의 아름다운 풍경 가운데 단연 으뜸은 밭돌담이다. 더욱이 바닷가 쪽의 밭담은 그 폭과 높이가 일반적인 담보다 큰 것을 알 수 있는데, 제주에서는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이처럼 튼튼하게 쌓아올린 밭담을 따로 ‘잣벡담’이라 부른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밭담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디를 가나 쌓아올린 돌과 돌 사이의 틈이 주먹 하나쯤은 거뜬히 들어갈 정도로 숭숭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람 구멍이다. 말 그대로 제주의 바람은 ‘할퀸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거세어서 틈 하나 없이 빼곡히 돌담을 쌓을 경우 십중팔구는 무너질 것이므로, 바람 구멍을 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밭돌담은 우도 전역에서 만날 수 있지만, 오봉리와 서광리 쪽이 특히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태왁과 망사리를 지고 해녀들이 줄지어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나절의 풍경은 때때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우도의 해녀들이 물질을 끝내고 돌아가고 있다.
우도의 길은 그 아름다운 풍경만으로도 운치를 더한다. 돌담 사이로 난 조붓한 마을길이며, 잣벡담을 끼고 바다까지 이어진 그윽한 길과 산호빛 해안을 따라 펼쳐진 시원한 도로와 쇠머리오름으로 올라가는 구불구불한 오름길은 우도만의 매력적인 풍경이다. 쇠머리 오름 아래로 펼쳐진 유채밭 길에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성산 일출봉을 감상하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다. 서빈백사 해수욕장과 검멀레해안, 쇠머리오름 또한 그냥 지나쳐서는 곤란하다. 1박2일 촬영지였던 서빈백사 해수욕장은 각종 CF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3. 가거도: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위치한 후박나무 섬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45킬로미터. 목포에서 배를 타면 4시간이 넘게 걸리고, 그것도 이틀에 한번씩 짝수날만 가거도를 운행한다. 가거도를 소흑산도라 부른 적도 있었지만, 이는 일제가 붙인 이름으로 잘못된 명칭이다. 본래 가거도(可居島)는 섬이 아름답고 인심이 좋아서 ‘가히 머물러 살만한 섬’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가거도행 여객선은 비금과 도초, 흑산과 홍도, 하태도를 경유해 가거도항에 닿는데, 항구 들머리에서 맨 먼저 손님맞이를 하는 것이 기암절벽으로 솟은 장군봉과 망추봉, 회룡산과 녹섬(큰녹섬, 작은녹섬)이다.
가거도 섬등반도 풍경.
가거도에는 세 개의 마을이 있다. 남쪽에 대리, 서쪽에 목리, 북쪽에 대풍리. 대부분의 주민은 1구인 대리에 모여 산다. 대리에는 학교와 우체국 등 관공서와 여관, 식당이 몰려 있으며, 낚시꾼이나 관광객들이 대부분 묵어가는 곳이다. 대리 동쪽 산기슭에는 멍씨할멈 당집이 있어 산신과 용신을 비롯해 지상을 떠도는 130여 위의 무주고혼을 모셔놓았다. 또한 이 마을에는 입에서 입으로 구전된 ‘가거도 멸치잡이 노래’가 여전히 불리워지고 있다. 1988년 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 노래의 기능보유자는 김명후 노인이고, 김창대, 고흥석, 채호길 씨 등이 전수자로 있다.
가거도는 전체가 후박나무 섬이다. 우리나라 후박피 생산량의 70퍼센트를 가거도에서 공급할 정도이다. 해서 요즘 가거도는 후박나무 껍질을 벗기고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가거도는 다른 섬에 비해 어업이 성하지 않은 대신 후박피 생산이 거의 절대적인 돈벌이다. “앞에가 논이 있소. 뒤에가 밭이 있소. 우리가 이 바다 끝에서 우리나라 섬 지킴시롱 살고 있어도 후박피 안 하면 못 먹고 사요. 근디 중국의 닭울음 소리가 들린다꼬 하는 여기가 이제는 중국산 후박피 땜시 못살 판이요.” 대리에서 만난 박성금 할머니의 말이다.
<1박2일>에도 나온 가거초등학교와 바다가 보이는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4. 외연도: 사랑나무와 원정해녀를 만날 수 있는 섬
여객선은 호도와 녹도를 차례로 거쳐 1시간 50분만에 안개 자욱한 외연도에 도착한다. 오후 5시가 다 됐음에도 선창과 섬마을은 안개에 휩싸여 사위가 온통 희부연하다. 외연도. 사실 외연도라는 섬 이름도 안개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대천을 중심으로 보자면 외연도는 가장 바깥에 자리한 섬이고, 언제나 연기가 낀 듯 안개가 자욱하여 ‘바깥에 있는 안개 자욱한 섬’이란 뜻의 외연이란 이름이 붙었다. 대천 가는 뱃길에 만날 수 있는 녹도나 호도와 섬 크기는 비슷하지만, 사람들은 외연도가 훨씬 많아서 130여 가구 정도가 이 곳에 산다.
외연도 상록수림에서 볼 수 있는 사랑나무. 이곳을 지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1박2일>에도 소개되었다.
섬마을이야 한바퀴 둘러보는데 10여 분이면 끝날 정도로 그리 크지 않지만, 학교 뒷동산을 넘어가면 ‘작은 명금’, ‘큰 명금’이 있고,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멋진 무인도를 배경으로 펼쳐진 일몰 명소인 ‘누적금’이 나온다. 명금이란 이름은 고대 중국 제나라에서 온 전횡(田橫) 장군이 이 곳에서 싸우다 명을 다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며, 누적금은 전횡 장군이 이 곳 바위에 낫가리를 쌓아 노적처럼 보이게 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두 곳 다 작은 몽돌밭을 끼고 있다. 또 학교 가는 길에서 왼편으로 길을 잡아 올라가면 외연도의 자랑인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136호)이 펼쳐진다. 해질 무렵도 아닌데, 오래된 숲은 저녁처럼 캄캄하다. 나무마다 휘휘 틀어올린 가지와 나뭇잎 사이로 드러난 하늘에서는 간간 신령한 기운의 빛줄기가 새어든다. 당산숲이기도 한 이 곳의 숲(약 3천 평)에는 동백나무를 비롯해 후박나무와 팽나무, 식나무, 돈나무, 붉가시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상록활엽수가 자라고 있다. 특히 ‘사랑나무’로 불리는 두 그루의 동백나무도 숲에서 만날 수 있다. 외연도에는 모두 16명의 해녀가 있다. 특이한 것은 이중의 대부분은 원정 해녀라는 점이다. 7명을 빼면 모두 제주에서 원정온 해녀다. 원주민 해녀 7명도 과거 제주에서 원정 와서 정착한 해녀가 대부분이다. 이들 해녀들은 요즘 한창 해삼과 전복을 따러 나간다. “지금은 해삼도 들어갈 철이라 많이 안나요. 전복도 별로 없고. 우리는 다 제주에서 와 물질을 해요.” 올해 처음 제주에서 원정 물질을 왔다는 해녀 부성여 씨의 말이다. 해녀들이 물질해 온 것들은 어촌계와 해녀 개인이 6:4 비율로 이문을 나눈다. 이들이 물질을 하는 장소는 본섬 주변에 있는 횡견도(빗견이, 빗갱이), 오도(먹금, 과거 오동나무가 많아서 붙인 이름), 황도(느레), 대청(멍물), 소청(청섬), 중청 등의 무인도다.
골목에서 비석치기를 하고 노는 외연도 아이들.
선창을 떠난 해녀배는 횡견도부터 소청까지 차례차례 해녀들을 부려놓는다. 이 곳 멍물과 청섬 주변의 바위는 가마우지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다. 내가 해녀배를 타고 나가 가마우지떼가 머무는 바위 옆을 지나는데도 녀석들은 아무런 동요 없이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실 외연도에만 머물면 섬 주변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가 없다. 외연도 주변의 무인도는 어떤 다도해 풍경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지니고 있다.
5. 여서도: 한국의 작은 ‘마추픽추’
청산여수(靑山麗水). 산과 물이 푸르고 아름답다는 이 말은 청산도와 여서도에서 비롯한 말이다. 청산도가 산과 들, 바다가 온통 푸르고 아름다운 섬이라면 여서도는 물이 좋고, 바다가 투명한 섬으로 통한다. 한마디로 청산도는 산이 좋고, 여서도는 물이 좋은 곳이다. 옛날 사람들은 여서도를 일러 “여자가 애 배서 나오는 섬”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여서도가 지금처럼 매일 배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거친 바다 날씨에 따라 오랜 동안 섬에서 발이 묶일 때가 많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돌담이 아름다운 여서도 섬마을 풍경.
또한 과거에는 제주도의 잠녀들이 여서도로 원정 물질을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 섬에 오면 잠녀들은 상당기간을 머물러야 했으니, 제주도 처녀 잠녀와 여서도 총각 어부가 눈이 맞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실제로 여서도에는 제주도에서 시집왔다는 할머니들이 적지 않은 편이다. 여서도에 물질 왔다가 아예 여서도 사람으로 눌러앉은 셈이다. 이래저래 여서도는 오래 전부터 오가기가 쉽지 않은 낙도였고, 지금도 하루에 한번 배가 다니기는 하지만, 한번 가려면 3시간여의 뱃시간이 걸리는 뭍에서 꽤나 멀고, 불편한 섬에 속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 때문에 여서도 앞바다는 물반 고기반을 자랑한다. “여서도는 마지막 남은 청정지역이에요. 요즘엔 낚시꾼들이 더러 와서 물을 흐려놓고 있지만서두....” 배에서 만난 외항선원 출신의 말이다. 그는 오랜 동안 외항선을 타고 전세계를 떠돌다 5년 전 우연히 여서도에 왔다가 다른 것 다 제쳐두고 물이 좋아 여서도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바닷물만 좋은 것이 아니라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과 계곡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오히려 바닷물보다 좋다고 한다.
물반 고기반으로 불리는 여서도 앞바다.
2시간 30분이나 걸리는 여서도 뱃길은 짙은 해무로 인해 여서도 선착장에 다 와서야 여서도의 맑은 바닷속과 산자락을 따라 고성같은 돌담을 두른 마을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섬에 내리자마자 미로와도 같은 돌담길을 되는대로 올라간다. 여서도 돌담은 참 기막힐 정도로 구불구불하다. 여름철 태풍과 겨울철 삭풍이라는 자연의 재앙을 견디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낙도의 환경이 만들어낸 생활의 예술이 바로 돌담인 것이다. 그러나 애당초 이 돌담은 미학적인 관점보다는 기능적인 생각에서 비롯한 지극히 반미학적 구조물이다. 오로지 바람으로부터 집과 식구, 살림을 보호하고자 한 지극히 인간적인 의지가 오늘날 여서도의 돌담을 미학적인 삶의 예술로 만들어낸 셈이다. 이 때문에 여서도는 ‘한국의 마추픽추’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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