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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7 개울에서 보낸 한 철 (55)

개울에서 보낸 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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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에서 보낸 한 철



 

묘생은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축제가 아니었다.
겨울은 몹시 추웠고, 때때로 폭설이 퍼부었다.
나의 고양이적 본능은 종종 내 안의 짐승을 깨워 음험하게 날뛰었다.
다만 나는 인간처럼 비열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들은 축복받은 몸으로 태어나 천박한 영혼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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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라도 된 듯한 저열한 횡포.
나를 거두었던 주인은 나를 방기했고,
내가 신발까지 핥아준 어떤 인간은 그 신발로 나를 걷어찼다.
나의 가장 큰 잘못은 처음부터 인간을 믿었다는 것이다.
자고로, 가장 친하다는 인간도 가장 포악한 고양이만 못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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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운이란 것도 믿지 않는다.
행운이란 강물에 날리는 꽃잎과 같아서
잠시 가지에 머물렀다가도 금세 훨훨 날아가버린다.
배고픈 밤과 거리의 열병은 수시로 나를 찾아왔다.
언제나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걱정이었다.
살아 있으므로 삶이 고통이었다.
내 까칠한 혓바닥은 달콤한 추억보다 캄캄한 밤을 핥는 날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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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나는 위로받고 싶었다.
구원받지 않아도 누군가 ‘힘들지’라고 말해주는 것을 원했다.
그러나 어떤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핥아주기에는
고양이의 밤들이 너무 차갑고 딱딱했다.
추운 밤을 건너면 언제나 배고픈 아침이었다.
눈을 뜨면 어디로든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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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나에게는 빈 마음을 달래주는 나만의 복된 영역이 있었다.
젖과 꿀이 흐르진 않지만, 물과 시간이 흐르는 냇물.
그것을 나는 ‘바람의 개울’이라 불렀다.
아침에도 개울, 저녁에도 개울.
개울만이 나의 유일한 위안이고 음악이었다.
이 개울은 오롯이 나의 영역이었으므로
나는 줄곧 혼자 노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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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고양이들이 물을 싫어하는 까닭으로
나는 어렵지 않게 이 개울과 친해졌다.
물에 대한 공포는 순간순간 찾아왔지만,
나는 그 공포를 앞에 두고 질끈 눈을 감았다.
가끔은 그 두려움 속으로 처벅처벅 걸어들어갔다.
개울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봄에는 연분홍 풀꽃들이 만발했고,
가을에는 억새와 갈대가 무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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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는 발톱만한 작은 물고기들이 살았으며,
오리와 물새가 수시로 날아들었다.
나의 사냥법은 보잘 것이 없어서 그동안 물새 한 마리 잡지 못했지만,
내가 정작 사냥하고자 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종종 나는 개울과 개울 사이에 난 편견을 건너뛰었다.
때로는 오래된 고양이 습관을 뛰어넘었다.
더러는 찰방찰방 맨발로 개울과 물의 질감을 느껴보았고,
오래오래 냇물을 응시하며 여울소리에 섞어 내 아픔을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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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는 차마 채울 길이 없었으나,
갈증을 달래기엔 이만한 곳이 없었다.
비린내 나는 청춘은 그렇게 깊은 심연의 냇물과 함께 흘러갔다.
언제나 개울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나는 그런 개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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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에게도 개울만의 슬픔이 있었다.
한번은 어떤 인간이 개울의 모든 영혼을 파헤치고, 그것을 트럭으로 실어갔다.
밤새 나는 그것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인간만이 그 소리에 귀를 막았다.
인간은 저희들끼리만 통하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만물의 영장이라 주장하지만,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은 일찍이 서로가 통하는 언어로 교감하고, 소통해왔다.
그래서 개울가의 나무가 잘리면 물고기가 아프다.
개울가의 꽃을 꺾으면 풀벌레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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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서로 아파하고 서로 엉켜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개울에 가면
풀잎마다 자갈마다 여울목마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천사들이 살고 있다.
바람에도 구름에도 물방울에도 고양이 눈에만 보이는 요정이 있어서
그것들은 저마다 반짝이고 일렁이고 졸졸거린다.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더없이 소중하고 갸륵하다.
그러니 제발 그대여, 이 개울만은 그냥 놔두라.
흘러가는 것들을 막지도 말고, 날아가는 것들을 잡지도 마라.


** 위 사진들은 약 2개월 정도 개울가에서 만난 봉달이를 틈틈이 기록한 사진들입니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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