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지난겨울 어미를 잃은 당돌이와 순둥이는
한동안 공포와 불안 속에 살았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나도
두 녀석은 황급히 뒷간 구멍 속으로 숨곤 했다.
다시 예전의 당돌한 모습으로 돌아온 당돌이. 어느덧 중고양이가 다 되었다.
아마도 두 녀석은 누군가 사료 그릇을 깨뜨리고
어미 고양이를 해치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봤는지도 모른다.
어미가 떠난 지 두어 달이 지나면서
녀석들은 이제 어미 없이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순둥이의 보호냥 노릇을 하는 당돌이는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 다시금 당돌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담벼락 아래 나란히 앉아 있는 당돌이와 순둥이.
내 발자국 소리가 나면 녀석은 냥냥거리며 뛰쳐나와
예전처럼 내 앞을 빙글빙글 돈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내 앞에서 ‘발라당’도 선보였다.
발라당치곤 매우 어설펐지만,
딴에는 사료배달을 하는 나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당돌이 녀석 처음으로 내 앞에서 어설픈 발라당도 선보였다(위). 예전처럼 내 바로 앞까지 접근해 냥냥거리는 당돌이. 두려움의 눈빛도 당돌한 눈빛으로 바뀌었다(아래).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당돌이와 순둥이가 사는 골목에도 봄이 찾아왔다.
골목 끝자락에는 살구꽃이 피고,
어귀의 화단에는 앵두꽃이 피었다.
어미가 떠난 뒤로 두 녀석은 생각보다 용감하게 영역을 지켜내고 있다.
골목에 먼저 나와 주변을 살핀 뒤 순둥이를 부르는 당돌이. 둘이 함께 하는 영역 산책.
두 녀석이 사는 영역은 정기적인 사료 공급 때문인지
주변의 고양이들도 호시탐탐 영역을 탐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순둥이는 뒷다리를 다치기도 했다.
심한 부상은 아니어도 뒷다리 허벅지 털이 다 벗겨졌다.
(이곳의 치열한 영역싸움에 대한 포스팅은 따로 올릴 예정이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당돌이가 보호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당돌이와 순둥이는 이제 점점 더 둥지를 벗어나 먼곳까지 진출하곤 한다.
고 차돌멩이 같은 녀석이 이 동네의 왕초고양이인 ‘흰노랑이’(축사 대모의 낭군)의 위협에도
털을 바짝 세우고 덤빌 태세를 한다.
내가 볼 땐 왕초고양이가 가소롭고도 참 당돌해서
‘그래그래 내가 너랑 싸워봤자 명성에 금만 가지’ 하면서 봐주는 듯하다.
당돌이는 이제 점점 더 멀리까지 먹이원정을 가곤 한다.
담벼락에 세워놓은 나무 그루터기에 발톱을 갈고 있는 당돌이.
한번은 축사 인근의 전원주택 화단을 산책하는 녀석을 본 적도 있다.
돌아보면 참으로 야속하고도 모진 삶이었지만,
그래도 묘생은 계속된다.
죽은듯 고요했던 살구나무에 분홍색 살구꽃이 피어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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