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꽃이 서리서리 피었습니다
이끼의 숲에 떨어진 서리 내린 단풍잎. 아침 햇살에 서리가 녹아간다.
서리꽃이 피었습니다.
오늘 아침 서둘러 근교의 숲으로 나갔더니
사방천지 서리꽃이 피었습니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서리꽃이 피었습니다.
붉은색 장미 열매에 서리가 마치 소금처럼 내려앉았다.
누군가는 서리꽃이야 산정 높은 곳에 피는
상고대만한 게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내 눈에는 이렇게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서리꽃도
산정의 상고대만큼이나 이뻐보입니다.
질기게 생명력을 피워올린 풀포기 푸른 잎마다 서리꽃이 하얗다.
큰 나무의 푸슬한 그늘마다 서릿발이 촘촘하고,
떨어진 단풍잎과 가랑잎에도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았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시퍼런 잎을 내민
잘고 질긴 풀포기마다 흰 서리가 엉기고 맺혀
저렇게 시리고 이쁜 ‘서리꽃’이 되었습니다.
숲 그늘의 누렇게 퇴색한 우산이끼 머리에도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가을에 피었다 말라버린 들국과
아직도 간신히 메마른 이파리를 매단 단풍잎에도
서리꽃이 피었습니다.
가지마다 붉은 열매를 무겁게 늘어뜨린 백당나무 열매에도
까맣게 굳어버린 오가피 열매와 산딸나무 가지에도
서리꽃이 피었습니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서리 낀 구기자 열매와 역광 속에 빛나는 잎들.
붉은 장미 열매, 찔레 열매, 구기자와 산수유,
나팔꽃씨와 바닥에 떨어진 상수리 껍질과
음습한 곳의 이끼와 주목나무에도
서리꽃이 피었습니다.
말불버섯 노균 위에 활짝 핀 서리꽃과 도토리 껍질에 달라붙은 서리꽃.
지난 가을 수없이 사진 찍었던 말불버섯 노균 위에도
고목의 구름버섯 끝자락에도
어김없이 서리꽃이 피었습니다.
해가 뜨기 전에 서둘러 서리꽃이 피었습니다.
돌돌 말린 비비추 이파리에도 서리꽃이 피었다.
이제 막 해가 떠올라 햇살이 비추면
서리꽃은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서리꽃의 아름다움은 바로 해가 떠서
막 햇살이 서리꽃을 비출 때,
그 때가 절정입니다.
나무에 여적지 매달린 단풍잎과 서리꽃.
아침 햇살을 받은 서리꽃은 수정처럼 빛나고,
때로 날카로운 유리조각처럼 햇살 속에 날을 세웁니다.
서리꽃을 찍기에는 싱거운 무서리보다
되게 내린 된서리가 제격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붉은 백당나무 열매(위)에도, 찔레 열매(아래)에도 서리꽃이 하얗다.
어차피 햇살이 되게 비추면
서리꽃은 서릿발 세울 새도 없이 이슬이 되었다가
수증기로 사라지거나
땅으로 스며들고 말 것입니다.
나팔꽃씨 위에 날카로운 서릿발이 촘촘하게 나 있다.
상고대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눈꽃처럼 만발하지도 않지만,
서리꽃은 춥고 어두운 곳의 ‘꽃’이 되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푸른 나뭇잎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서리꽃.
소박하게 새벽에 꽃 피어
순식간에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것,
그 순간의 미학,
그게 바로 서리꽃의 매력이고,
서리꽃의 아름다움입니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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