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에 봄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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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에 봄이 오다



매화마을 청매화 너머로 보이는 좌판을 펼친 사람 풍경.


간밤에 흩뿌린 달디단 봄비가 섬진강에 맞붙은 들판을 한껏 푸르게 물들여 놓았다. 볕이 좋은 자리마다 청매화 홍매화도 피어서 곧 산자락 높은 매실밭까지 번질 태세다. 나는 구례-하동간 19번 국도를 버리고, 구례에서 다리를 건너 광양 매화마을까지 가는 강변도로를 천천히 달린다. 19번 국도보다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가는 내내 섬진강변에 핀 매화를 질리도록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화마을 언덕의 청매화 너머로 보이는 섬진강의 실루엣.


더더욱 19번 국도에서는 제방을 쌓아놓아 섬진강 자락이 안보일 때가 많지만, 강변도로는 내내 섬진강의 물길 꽃길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 강변도로는 벌써 매화가 한창이다. 청매화, 홍매화, 백매화가 다투어 피어 상춘객을 홀린다. 구례 산수유마을보다 앞서 산수유도 꽃망울이 터졌다. 흐드러진 매화 너머로 구불구불 섬진강 물줄기도 햇살꽃을 반짝이며 흘러간다.


섬진강변에 핀 흰매화(위)와 강변도로의 청매화(아래).


진안과 장수에서 내리기 시작한 섬진강은 임실과 순창을 지나 곡성에서 보성강을 받아들이고, 다시 구례에 이르러 지리산 여러 골짜기 물을 합친 다음, 하동에 와서는 화개 골짜기의 물을 다 모아 비로소 물깊이와 폭을 더해 강다운 참모습을 드러낸다.


매화마을 매실 항아리 장독대 아래 피어난 겹홍매화.


1930년대에 펴낸 <하동지>에 따르면, 지난날 수만 마리의 금두꺼비가 광양의 섬거로부터 와서 강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강의 이름을 섬진강이라 했다는 유래가 전한다. 일찍이 하동이 본관인 조선시대 문관 정여창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바라보며 이렇게 노래했다.



아침 볕에 자태를 드러낸 흰매화.


흐늘거리는 창포 잎이 바람을 희롱하는데

사월 화개에 보리가 이미 가을이네

두류산 천만봉을 두루 구경하고

외로운 배로 강물 따라 흘러가네.



아침 스프링쿨러 물방울이 맺힌 매화.


그 때만 해도 섬진강과 바다가 만나는 갈사에서부터 화개골 들머리인 화개나루까지 돛단배 오르내리는 모습을 만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을 터이다. 지금은 기껏해야 재첩잡이 배가 섬진강 하구를 오르내리지만, 과거에는 섬진강도 제법 깊은 강이었다.



확실히 아름다운 홍매화가 막 꽃망울이 부풀어 곧 터질 것만 같다.


사실 제주도를 제외한 육지의 봄은 섬진강을 거슬러오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섬진강 하류의 광양과 하동에서 매화 꽃불이 지펴져 구례의 산수유꽃으로 꽃불이 번져나가는 것이다. 매화는 섬진강에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린다. 매화마을로도 불리는 광양 다압면 섬진마을에서는 3월 초순부터 희고 뽀얀 매화 행렬이 온통 길이며 산자락을 점령해버린다.



섬진강을 따라가며 만난 산수유와 동백.


본래 매화는 흰꽃을 피우는 백매화, 흰꽃에 푸른빛이 약간 감도는 청매화, 붉은꽃과 분홍꽃을 피우는 홍매화, 노란꽃을 피우는 황매화로 나뉘는데, 현재 매화마을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매화는 청매화다. 아마도 매화나무의 과실인 매실의 쓸모로는 청매실이 좀더 다양하기 때문이다.



청매화 꽃망울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매화마을 좌판 풍경.


강변도로와 달리 정작 매화마을에는 매화가 덜 피었다.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 꽃철이 늦어졌다는 말답게 매화마을에서는 이제야 매화 꽃망울이 부풀어 터지고 있다. 이따금 양지바른 곳에만 드문드문 매화가 만개해 꽃핀 매화 한 그루에 벌떼처럼 사람들이 모여든다.



섬진강 맑은 물과 강변도로에서 바라본 섬진강 물줄기.


매화마을 주차장 입구에는 구경꾼을 상대로 시골 할머니들이 봄나물이며 먹을거리를 내놓고 좌판을 펼쳤다. 형형색색 사람꽃이 매화마을 매화보다 아름답다. 사실 나에게 매화 구경은 매화마을보다 섬진강 자락에 아무렇게나 핀 길가의 매화 한 그루가 더 매력적이다.



봄이면 섬진강을 거슬러오르는 섬진강 은어.


서둘러 매화마을을 내려와 나는 한번 더 섬진강을 거슬러오른다. 가다가 쉴곳이 나오면 차를 받쳐놓고 꽃구경 물구경을 한다. 매화가 피면 섬진강에서는 이제 곧 본격적인 재첩잡이가 시작될 것이고, 버들잎을 닮은 은어도 떼지어 올라올 것이다. 이렇게 매화가 섬진강에 봄을 알렸으니, 섬진강은 이 봄을 사방으로 퍼뜨리며 흘러갈 것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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