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풍경, 대장간과 대장장이
갈탄 화덕 속에서 벌겋게 호미가 달궈지고 있다.
쩡 쩌엉 쩌엉 쩡. 어디선가 쇠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낙안읍성 한복판에서 들리는 이 소리는 대장간에서 나는 소리다. 여기저기 쌓여있는 쇳덩이와 쇳조각들,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커다란 모룻돌, 화덕에서 발갛게 갈탄이 타고 있고, 이따금 손님이 낫이나 부엌칼 따위를 갈러 오면 대장장이가 스윽슥 스윽슥 숫돌에 날을 별러 주는 모습이 오래 전 시골 장터에서나 보던 대장간 풍경 그대로다.
대장장이가 달궈진 호미를 모룻돌에 올려놓고 메질을 하고 있다.
옛날에는 대장간에 풀무와 화덕을 비롯해 모루, 메, 망치, 집게 등의 연장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그 때는 순전히 풀무로 바람을 일으켜 화덕불을 피워 쇠를 달군 뒤, 메질(혹은 망치질)과 담금질만으로 낫이며 망치, 호미, 곡괭이, 칼, 쇠스랑, 도끼, 작두, 장도리, 보습 등등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예전에 쓰이던 손풀무는 전기 풀무로 대체된 지 오래다. 풀무를 쓰려면 고정적으로 풀무질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도 사람이거니와 풀무질하는 시간이 만만치가 않다. 손풀무가 사라진 것은 그 때문이다. 본래 옛날에는 대장간에 최소한 풀무잡이와 집게잡이, 메잡이 등 3명이 필요했었다. 풀무질을 어느 정도 익히면 메질을 하는 메잡이가 될 수 있었고, 그 다음이 집게잡이였다. 집게잡이는 메잡이가 메를 들고 내리칠 때 벌겋게 달구어진 쇠를 집게로 잡아 이리저리 돌리며 골고루 메질이 돌아가게 하는 노릇을 한다. 오랜 경험과 기술 없이는 집게잡이 노릇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화덕에서 벌겋게 달궈진 호미를 꺼내는 대장장이.
대장간이 사양길로 접어든 것은 70년대부터다. 그 때부터 서서히 수요가 줄더니 8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대장간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이른바 농촌에서도 기계화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대장간도 내리막길로 접어든 것이다. 한 예로 60~70년대까지만 해도 곡성에는 무려 일곱 군데의 대장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곡성에는 대장간이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도 오랜 세월 시장에서 대장장이를 하던 분은 힘에 부쳐 그만둔 상태이다.
모룻돌에 놓인, 벌겋게 달궈진 호미.
지금은 그만둔 곡성 대장장이 조수익 씨의 아내는 그 때의 고생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손님이 오면 손님 세워놓고 고물상 가서 쇠 사와서 허고, 개탄 떨어지면 애기를 등에 업고 남원까지 가 탄을 사서 버스로 실어날렀어요. 그 띠는 셋방 살았는디, 낫 한 가락에 150원 할 띠요. 우리 애기덜도 고상 마이 했소. 용돈 하나 안쓰고, 큰아들이 그 띠 광주로 학교 대녔는데, 하루 1000원을 주면 차비 냉기면서 대니고. 하이고, 우리가 첫날 장에 300원을 냉기고, 니어까 끌고서 집으로 들어가는디 기맥히듬마요. 처음에 둘이 일꾼도 안두고 참 억척으로 했어요. 초창기엔 하루 만원, 2만원 그랬이요.” 낫이 150원, 호미와 부엌칼이 20~30원, 작두가 1500원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대장간에서 만든 낫과 호미와 부엌칼, 곡괭이들.
시대가 변한 요즘에 대장장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굶어죽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보통 낫 한 자루가 모양새를 갖추자면 일곱 번 이상 화덕에 들어가 불구덩이 신세를 져야 하고, 한번 들어갔다 나온 낫가락은 백번 이상 망치를 맞아야 비로소 ‘쓸모 있는’ 낫이 된다. 낫 한 자루에 약 천번 정도의 망치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낫을 하루 10자루만 만들어도 만번의 망치질이 필요한데, 요즘에 어디 하루 한 자루의 낫이 팔리기나 한단 말인가.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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