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도: 푸른 절경 속의 해녀섬
하태도에 내릴 사람들이 여객선에서 종선으로 옮겨타고 있다.
지독한 안개 속을 뚫고 하태도로 간다. 하태도는 태도(苔島)의 세 섬(상태, 중태, 하태)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목포에서 오자면 3시간 반이 걸리는 뱃길이다. ‘태도’라는 이름은 섬과 바다가 한데 어울려 푸르게 보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며, 갯바위에 돌김(석태)이 많아 ‘석태 나는 섬’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약 130킬로미터 떨어진 섬. 주민은 모두 50여 가구 정도가 살며,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거나 민박집을 운영한다.
하태도 갯바위의 말미잘(위)과 장부래 백사장의 농게(아래).
마을 한가운데는 하태분교가 있고, 5명의 학생과 2명의 선생님이 있다. 하태도는 여객선이 선착장에 닿을 수 없어 종선이 여객선까지 와서 손님을 데려간다. 배 위에서 바라본 하태도는 전체적인 모양이 말발굽처럼 생겼다. 반도처럼 길게 뻗어나온 산자락은 나무가 드물어 마치 대관령 목장을 옮겨놓은 듯 초원의 언덕이다. 우묵하게 휘어져 들어간 지형에 장부래 해수욕장이 있고, 그 주변을 따라 돌담을 두른 집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해녀 김순단 할머니가 오리발을 머리에 이고 선창으로 향하고 있다(위). 해녀를 싣고 굴개 쪽 바다로 나가는 해녀배(아래).
제법 맑은 날이지만, 하태도에서는 수시로 안개가 섬과 바다를 뒤덮곤 한다. 하태도에서는 아직까지 휴대폰이 되지 않는데, 다만 선착장 방파제 끝에 서면 운좋게 통화가 될 때가 가끔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다고 속터질 필요는 없다. 이런 곳이야말로 휴대폰을 끄고 자연과 교신하기 더없이 좋은 곳이므로.
굴개 쪽 바다에 부려진 해녀들은 본격적인 물질을 하기 시작한다.
과거 해안절벽을 매립해 만들었다는 해안길을 걸어 하태분교로 간다. 바다가 곧바로 내려다보이는 학교. 교실 앞 화단에는 노란 달맞이꽃과 탐스런 수국이 한창이다. 옛날에나 볼 수 있었던 오래된 종도 걸려 있다. 토요일 오후라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두 분의 선생님만 학교를 지키고 있다. 운동장에서 보니 하태도의 전교생이 백사장에서 놀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어린 남희와 희지는 서먹한 기색도 없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졸라댄다. 희지는 웃고, 남희는 잔뜩 찌푸린 얼굴이다. 사내 아이들은 스티로폼 부표를 가지고 놀고, 여자 아이들은 소꼽놀이를 한다. 한쪽에서는 재잘거리고, 한쪽에서는 첨벙거린다. 이 아이들만으로도 하태도는 생기에 넘친다.
굴개 쪽 바다에서 만난 해식동굴(위). 안개가 살짝 드리운 하태도 동쪽 해안 풍경(아래).
하태도 마을은 웃말, 고랑, 장골, 석멀이 합쳐 한 마을을 이룬다. 따로 당집을 모신 당산숲 쪽은 안골이라 불리지만, 여기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과거 하태도에는 웃말에만 100여 가구 정도가 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웃말 가는 길에 과거 초가집이었을 듯한, 천막을 씌워놓은 집을 만났다. 집주인인 박금순 할머니(72)는 이 집이 옛날 목포에서 나락을 싣고 와 지은 집이라고 했다. “이게 옛날 지서논 집인디, 지끔은 이래 갑바로 씌워났당게. 나 안 살았음 폴씨 무너져 버렸제.” 할머니는 방금 물질을 다녀왔는지 집앞 빈집 마당에 돌미역과 파래를 널고, 배말(보말)과 보찰(거북손)을 다듬었다.
박금순 할머니가 바닷가에서 따온 보말을 다듬고 있다(위). 전복 따는 도구인 빈창(아래).
“나는 이제 해녀질은 못허고, 가새서 이런 미역이나 뜯지 뭐. 이자 날이 이래가꼬 미역도 막 돋은 디만 할랑할랑하고, 좀더 더와버리면 끄트머리 하얗게 되고 구녕이 뻥뻥 나분다께. 요린데는 바람이 불어가꼬, 오히려 미역이나 이런 거 양식을 못히여. 나도 한창 띠는 미역을 가닥으로 넘겨가꼬 100무들(다발)썩 했는디. 지끔은 이래 쪼끔썩 미역도 하고, 파래도 하고, 톳도 히여. 여기는 멀리 나가서 전복 잡는 해녀는 한 20명쯤 될랑가. 배가 한 열 명쯤 해녀를 싣고 나가. 그런 배가 시대(3척)여.” 이재례 할머니(76) 댁도 천막을 씌운 집이다. 뒤란에 올라서 보면 천막 지붕 너머로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그런 집이다. 할머니에 따르면 전에는 이 집이 도단집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돌로 쌓아올린 죽담집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었다.
웃말에서 만난 해녀 김단님 할머니와 김도덕 할머니.
웃마을에서 만난 최일례 할머니(78)는 더운 날씨에 고생한다며, 집에서 직접 담갔다는 탁주를 냉장고에서 꺼내왔다. 삶은 배말(보말)도 안주로 내왔다. 처음 먹어본 배말 맛은 쫄깃쫄깃하고 고소하며, 해초 냄새가 물씬 났다. 할머니는 만재도에서 시집을 왔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언니가 먼저 이 곳으로 시집을 왔고, 아버지가 외롭지 말라며 동생도 하태도로 시집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자매는 이제껏 외롭지 않게 살아왔다고 한다. 웃말에는 비교적 옛날에 지은 집들과 오래된 풍경이 더러 남아 있다. 물론 사람 사는 집보다 빈집이 훨씬 더 많지만, 여기가 과거에는 하태도 본마을이었다.
두 명의 해녀가 물질을 끝내고 웃말로 돌아가고 있다.
웃말에서 내려오는 길에 두 명의 해녀를 만났다. 김단님 할머니(68)와 김도덕 할머니(74)다. 두 할머니는 인사를 하는 나를 앉히더니 빈창(전복 따는 도구)으로 전복살을 발라 내게 내밀었다. 생면부지의 사내에게 비싼 전복을 내어주다니! 내가 맛있다고 하자 또 다른 전복을 내밀었다. 염치불구하고 나는 두 개의 전복을 앉은자리에서 해치웠다.
하태분교 전교생 아이들이 장부래 해수욕장에서 놀고 있다.
“나이가 많아노니 이제는 물질도 잘 못히여. 여서는 배를 타고 나가 바다를 뺑뺑 돌아대니면서 물질을 히여. 내가 열 및살 때부터 물질을 힜어.” 김단님 할머니의 말이다. 김도덕 할머니 역시 스무살 무렵에 물질을 시작해 50년쯤 물질을 해왔다고 한다. 둘은 집이 같은 웃말이어서 언제나 가족처럼 단짝처럼 함께 물질을 다녀오는 사이란다.
흑백으로 색이 바랜 하태도 웃말의 옛날 사진과 여객선에서 바라본 현재의 하태도 섬 풍경. 과거와 현재.
이튿날에는 물때에 맞춰 해녀를 따라나섰다. 선창에서 만난 김순단 할머니(74)는 오리발을 머리에 이고 나왔는데, 그 모습이 꼭 챙모자를 쓴 듯했다. 내가 웃으며 카메라를 들이대자 할머니는 자꾸 고개를 돌려댄다. 어제 저녁에 만났던 김단님 할머니와 김도덕 할머니도 선창으로 나왔다. 이미 두 척의 배는 해녀를 싣고 나갔고, 마지막 배에 나는 몸을 실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물빛은 맑은 옥빛깔을 띤다.
웃말에서 만난 빈집의 돌절구(위). 하태분교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노인과 바다(아래).
해녀를 실은 배는 물살을 가르며 등대를 돌아 몽여와 굴개 쪽으로 향했다. 미처 만나지 못한 하태도의 비경이 가는 곳마다 펼쳐졌다. 배를 몰고 간 김석태 씨(63)는 몽여와 굴개 사이에 이르러 하나 둘 해녀를 부려놓았다. 해녀가 바다로 뛰어들 때마다 옥빛 물살이 튀어올랐고, 금세 여기저기서 전복이며 해삼을 건져 올라왔다. 배 위에서 나는 구경나온 죄로 해녀들이 내어준 전복이며 해삼으로 빈속을 달랬다. 햇살이 따가운 한낮이었다.
하태도 갯바위에서 흔히 만나는 것이 가마우지다.
<여행정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목포까지 간 다음, 목포 여객선터미널에서 짝수날 08:00시에 운항하는 배를 타야 한다. 최근 홀수날에도 운항하는 배도 새로 취항했는데, 역시 08:00시 출항 예정이다. 목포항-비금도-도초도-하태도-가거도-만재도를 차례로 거쳐 다시 목포항으로 돌아온다. 가거도에서는 12:30분에 목포항으로 가는 배가 있다. 목포 여객선터미널 061-243-0116, 244-9915, 숙박: 하태도 김관수 246-2437.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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