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만나는 제주도의 하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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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만나는 제주도의 하늘 땅 바다 



황혼 무렵 중산간 목장지대에서 바라본 한라산. 목장 초원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고 있다.


산은 험하고 바다는 사납다. 옛 사람들이 제주를 두고 표현한 말이다. 이는 아마도 화산섬인 제주가 지형적으로 높은 한라산을 품고 있는 데다 오름이 많고, 언제나 바람이 심해 고요한 바다를 만나기 어려운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말일 터이다. 흔히 제주를 가리켜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은 삼다(三多)의 섬이라고 한다. 화산섬이라는 환경은 제주를 돌이 많은 척박한 땅으로 만들었으며, 태풍의 길목에 자리한 탓에 늘 바람의 피해를 벗어날 수 없었고, 이는 어쩔 수 없이 제주 여인네들을 남편 없는 가장으로 만들어 험난한 생활전선으로 내몰았다. 예부터 제주의 여자들은 물때가 되면 바다밭으로 나가 물질을 하고, 물질에서 돌아오면 밭에 나가 김을 매는 두몫잡이 밭일을 운명처럼 여기고 살았다. 잠녀라고도 불리는 제주 해녀는 바다밭과 뭍밭의 밭일을 쉼 없이 해냄으로써 고기잡이를 떠난, 혹은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남정네의 몫을 악착같이 치러냈다.


세화해수욕장 인근의 바다. 그리고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화산섬인 제주에는 모래와 펄보다는 용암으로 뒤덮인 ‘걸바다’다 흔하다. 이 걸바다에는 우뭇가사리와 전복, 해삼 등이 풍부해 해녀들에게는 바다밭이나 다름없다. 이맘때쯤 제주의 바다에서는 ‘휘유우, 휘유우, 휴우~’, 하고 숨을 내뱉는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가득하다. 때로 물새소리같고, 때로 휘파람소리같기도 한 숨비소리. 숨비소리(숨비질소리)는 무자맥질을 끝내고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해녀가 물 속에서 참았던 ‘물숨’을 한꺼번에 길게 내뱉는 소리를 일컫는데, 한번 잠수에 들어간 해녀는 길게는 2분까지도 숨을 억눌렀다 내뱉기 때문에 그 소리가 멀리서도 들릴 만큼 날카롭다.


물질을 끝내고 걸바다에서 막 나온 해녀.


김녕 지나 세화, 애월 지나 사계, 성산포에서 서귀포까지 제주의 여름 바다는 온통 해녀들의 차지가 된다. 해녀들에게는 제주의 바다가 생업의 바다인 것이다. 하지만 관광을 온 구경꾼들에게는 제주의 바다가 그저 아름답고 평화로운 바다일 뿐이다. 때때로 시인들은 제주에 와서 하염없이 바다만 보다 온다. 하루종일 파도소리와 바다에 취한다. 시는 어쩌고 바다만 보냐고 하면, 시인은 그저 썰물처럼 돌아선다. 시인에게 제주바다는 철썩거리는 슬픔이고, 일렁거리는 아픔이다. 더더욱 제주도 출신의 시인에게 제주바다는 철썩이는 눈물이고 애환이다.



         해녀가 물질을 해온 우뭇가사리.


             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바다를 알 수 없다.


            누이야, 바람 부는 날 바다로 나가서 5월 보리 이랑

            일렁이는 바다를 보라. 텀벙텀벙

            너와 나의 알몸뚱이 유년이 헤엄치는

            바다를 보라, 겨울 날

            초가 지붕을 넘어 하늬바람 속 까옥까옥

            까마귀 등을 타고 제주의

            겨울을 빚는 파도 소리를 보라.

            파도 소리가 열어 놓는 하늘 밖의 하늘을 보라, 누이야.


         -- 문충성 <제주바다 1> 중에서


한라산 중산간에서 만난 초저녁달(위)과 석양에 물든 팽나무 한 그루(아래).


문충성은 제주도 출신 시인으로 제주바다에 서린 아픔과 슬픔을 이야기한다. 4.3항쟁이 할퀴고 간 역사의 상처를 그는 바닷물로 씻기고 있다. 덧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바닷물로 씻고 있다. 그에게 제주바다는 아름다운 추억과 슬픈 기억이 뒤섞인, 기억과 현실의 썰물과 밀물이 공존하는, 삶의 현장이며 기억의 저장소다. 제주가 아닌 뭍에서 온 시인에게도 제주바다는 오래오래 아프고 아린 메타포였다. 도종환도 <제주바다>라는 시에서 “그러나 당신은 비명과 총소리 이 갯가에 가득하던 때의/저녁 비린내를 알지 못하십니다”라고 바다를 통해 아픈 현대사를 말하고 있다. 일찍이 이산하는 <한라산>이라는 장시를 통해 제주 4.3항쟁의 아픔과 슬픔을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기록한 적이 있다. 분노없이는 갈 수 없는 땅/통곡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제주도의 혁명전사들은 그렇게 갔다”고 그는 탄식하고 절망했었다. 제주도에서 시인들은 온전히 풍경에 심취하지 못한다. 그러기엔 어딘가 불편하다.


김녕 인근의 바다. 황혼의 바다와 낚시꾼의 실루엣.

 

              창문을 닫아라 두려움은 없다

               두려움 끝에 오는 적막이 두려울 뿐

               적막 끝에 오는 슬픔이 두려울 뿐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사랑일 뿐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할 때만 사랑했을 뿐


               어둠이 차다 창문을 닫아라

               서귀포 앞바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저기 저 동백 꽃잎 한 점이

               눈보라에 숨을 가둔다


               -- 정호승 <서귀포에서> 중에서



샛집 문 너머로 보이는 뒷뜰의 풍경.


정호승은 바다가 내는 파도소리를 비명소리로 듣는다. 때때로 아름답고 황홀한 바다는 그 옛날 시인의 몫이 아니었다. 시인에게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할 때만 사랑했을 뿐”이다. 분명하게도 제주바다는 눈이 부시게 푸르고, 그지없이 아름답고 황홀하기만 한데, 시인에게는 그런 바다가 도리어 두려웠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에서 느끼는 시인의 상상력은 끝끝내 바다에 미치지 못했다. 끊임없이 철썩이는 파도와 이랑지는 물결은 시인의 문장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시인은 절망하고, 그 절망 끝에서 겨우 물고기만한 시 한 점을 건져올리는 것으로 마음을 다독였다. 어쩔 수 없이 제주의 바다는 시인에게 어쩔 수 없는 풍랑의 삶이고 세월이며, 허무한 사랑이고 죽음이어야 했다.

 

         섭지코지에서 바라본 성산포 앞바다.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 이생진 <바다를 본다> 중에서



정지 앞 물팡에 올려진 물허벅.


이생진은 그의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내내 바다와 성산포를 이야기한다. 성산포에서 그는 바다의 설교를 듣다가 바다가 시키는대로 옷을 벗고, 만년필에 바닷물을 담는다. 그는 성산포 바다에서 시와 고독을 만났고, 삶과 죽음을 보았다. 그에게 성산포 바다는 고향이고 원수고, 바다가 삼킨 또 하나의 바다다. 제주도에서는 조랑말도 바다를 보고, 한라산도 바다를 본다. 제주도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바다를 본다. 시인의 눈은 더욱 오래오래 술에 취한 바다를 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성산포 바다와 해녀. 뒤로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 말만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 이생진, <술에 취한 바다> 전문



제주항의 황혼 무렵 풍경.


유난히도 시인들은 제주에만 오면 바다에 취한다. 한라산도 있고, 목장도 있고, 숱하게 많은 관광지들을 마다하고 시인들은 바다에 가서 기어이 썰물 지고 노을 지는 시를 쓴다. 아리고 아련한, 그리고 하염없는, 기약없는 바다는 그렇게 시인의 마음에서 오래오래 철썩거리고 부서지다가 기어이 시를 팽개친 시인을 데리고 술집으로 간다. 그러므로 술에 취한 시인의 핑계는 모두 바다에서 온 것이다. 저 하염없는 바다.


구멍이 숭숭하게 바람구멍을 뚫어놓은 제주의 밭돌담.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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