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고양이의 보은, 박쥐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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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고양이의 보은, 박쥐를 선물로 받다

 

 

시골로 이사와 벌써 4년 넘게 살았다. 지난 4년간 이곳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고양이를 만났다. 시골에 와서 첫 인연을 맺었던 바람이, 나와 함께 산책을 하며 친구가 되어 주었던 달타냥,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던 봉달이와 덩달이, 그리고 가만이, 개울이, 여울이, 무럭이, 꼬미, 순둥이, 당돌이, 너굴이, 몽당이 등등 모두 60여 마리가 넘었다. 하지만 나와 인연을 맺은 고양이 중 상당수가 내 곁을 떠났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놓은 쥐약을 먹고 고양이별로 떠난 고양이만 해도 열댓 마리에 이른다.

 

 

최근 우리집 단골 손님이자 우리집에서 가장 오래 머물다 가는 고양이, 꼬맹이.

 

여러번에 걸친 쥐약 사건 이후 행방불명되었거나 영역을 떠난 고양이도 20여 마리. 결국 지금은 전원고양이 14마리와 집으로 밥 먹으러 오는 고양이 5마리와 삼월이, 역전고양이 두 마리, 모두 22마리만 남았을 뿐이다. 전원고양이들에게 매주 사료 한 포대를 배달하는 것을 빼면, 이제 내가 따로 운영하는 급식소는 우리집 테라스에 5마리를 위한 급식소와 역전 급식소 두 군데밖에 없다.

 

 

6년간 고양이 밥을 줘 왔지만, 고양이에게 박쥐를 선물로 받기는 처음이다. 황당한 고양이의 보은. 아침에 나가보니 꽤 멀리서 물어왔는지 침이 잔뜩 묻어 있었고, 침이 묻은채 박쥐도 딱딱하게 얼어 있었다.

 

오며가며 새로 유입된 고양이를 마주칠 때도 있지만, 나는 애써 그들을 외면했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사료값은 둘째 치고, 새로 인연을 맺어 또다시 쥐약 피해로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녀석들을 더는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집 급식소를 찾는 녀석들은 예전보다 식구가 늘었다. 늙은 노랑이 한 마리, 산고양이 고등어, 어린 고등어, 그리고 가장 오래 우리집 단골 손님으로 남은 몽롱이와 지난 늦가을부터 우리집을 찾기 시작해 이제는 거의 마당고양이 수준으로 단골이 된 꼬맹이(노랑이).

 

내게 박쥐 선물을 한 고양이는 몽롱이인지, 꼬맹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꼬맹이로 추정이 되긴 하지만.

 

얼마 전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이었다. 우리집을 찾는 고양이로부터 나는 황당한 선물을 받았다.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마당으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쯤에 무언가 시커먼 물체가 있어 내려다보니, 거기 박쥐가 한 마리 놓여 있었다. 쥐도 새도 아닌 박쥐가. 당황스러웠다. 예전에 희봉이라는 고양이로부터 쥐를 선물받은 적이 있고, 바람이란 고양이에게 새를 여러 번 선물받은 적은 있지만 박쥐는 처음이었다. 가만 보니 박쥐는 밤새 꽁꽁 얼어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가장 오랜 단골 몽롱이와 지난 가을부터 단골이 된 꼬맹이는 형제처럼 사이가 좋은 편이다.

 

고양이는 꽤나 멀리서부터 박쥐를 물고 왔는지 침이 잔뜩 묻은 채로 얼어 있었다. 아마도 야산의 동굴이나 어느 빈집의 처마 쯤에서 잡아온 모양이었다. 그것을 물고 고양이는 “선물로 이걸 갖다줘야지~” 하면서 그 먼 눈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고양이의 갸륵한 마음은 알겠지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고양이가 새를 해친다고 욕을 해대는 마당에 이런 선물을 받고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그 마음만은 고맙기 그지없었다. 자기 딴에는 늘 푸짐하게 사료를 내놓아서 이 혹독한 겨울을 보다 따뜻하게 날 수 있어 그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리라.

 

마당에 있다가 내가 거실을 왔다갔다 하면 꼬맹이는 테라스로 올라온다.

 

그나저나 박쥐 선물을 한 녀석은 누구일까. 단골손님인 몽롱이 아니면 꼬맹이 둘 중 하나일 텐데,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내를 역까지 태워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박쥐 선물이 놓인 계단 위에 몽롱이와 꼬맹이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둘 중 누군가가 선물을 받았나, 확인하러 온 것일지도.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꼬맹이 녀석은 슬그머니 도망을 쳤다. 생각해보니 몽롱이는 밥을 준지 1년이 넘었어도 그동안 ‘선물’이란 걸 한 적은 없었다. 밥을 달라고 할 때도 당연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을 보면, 선물을 한 주인공은 꼬맹이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눈이 내리자 몽롱이가 의자 아래서 눈을 피하고 있다(위). 추운 겨울 논에 세워놓은 짚가리는 고양이의 훌륭한 은신처가 된다(아래).

 

최근에 부쩍 자주 녀석은 나에게 캔은 물론 다양한 간식까지 얻어먹은 적이 있다. 추운 겨울을 나라고 박스에 옷가지를 넣어 집을 만들어 줬더니 가장 먼저 들어가 있던 녀석도 꼬맹이였다. 게다가 요즘에는 터주대감인 몽롱이보다 이 녀석이 우리집 급식소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편이다. 누가 되었든 마음만은 고맙게 받으마.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선물 가져오지 마라. 이런 선물이 없어도 밥 굶기지 않을 테니. 그래도 굳이 선물하겠다면 이런 거 말고 사진 찍을 때 치즈~!, 하고 좀 웃던가, 아님 마당에서 멋진 캣워킹 하다가 이렇게 V자 하면서 포즈 좀 취해 주던가.

 

 

우리집 터주대감인 몽롱이가 최근에 자주 찾아오는 고등어를 쫓아내려 으름짱을 놓고 있다.

 

* 최근의 고양이 여행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은 현재 트위터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가기: http://twitter.com/dal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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