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고양이의 사랑과 전쟁
길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에게는 사는 게 곧 전쟁이지만,
순간순간 찾아오는 사랑이 전쟁의 시름을 잊게 한다.
얼마 전이었다.
지난여름 <초록이 물든 고양이> 편에서 소개했던 어여쁜 삼색이를 다시 만났다.
녀석 또한 덩달이처럼 마당고양이이지만
사는 건 길고양이와 다를 바가 없다.
"어라 쟤는 단풍나무 다방에서 미팅하던 녀석이잖아!"
그날도 녀석은 폐철길 언덕을 혼자서 배회하고 있었다.
이 언덕으로 말할것 같으면
지난겨울 봉달이와 덩달이가 눈밭 경주를 벌이며 가끔 오르던 곳이다.
녀석을 발견하고 나는 가만가만 언덕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녀석은 나를 잊지 않은 모양이다.
(첫 만남 이후 서너 번 더 녀석을 만난 적이 있다)
언덕에서 삼색이와 덩달이가 마주쳤다.
언덕 저쪽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녀석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때였다.
냐앙냐앙 하는 요란한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웬 고양이가 밭둔덕을 올라와 이쪽으로 다가왔다.
덩달이였다.
덩달이가 언덕을 뛰어오르자 내 앞으로 걸어오던 삼색이는
갑자기 꼬리를 하늘로 뻗치더니 온몸의 털을 곧추세웠다.
눈앞에 덩달이가 나타나자 삼색이는 등과 꼬리의 털을 바짝 세웠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소리로 우우웅~ 어응거렸다.
덩달이도 덩달아 언덕의 8부 능선쯤에 엉거주춤 서서 하악거렸다.
둘다 극도의 경계심을 표출하는 중이었다.
두 고양이 사이에 나는 샌드위치처럼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었다.
망설임이 길어지면 안될 듯 싶어서
나는 둘 사이를 빠져 언덕 밑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덩달이도 덩달아 느야우웅 하며 이상한 울음을 울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언덕 위에서는
삼색이와 덩달이가 2~3미터 간격을 두고 심각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둘 다 늑대울음소리 같은 요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저 녀석들 기어이 한판 붙으려는 건가.
가만 보니 둘의 분위기 묘했다.
언덕에서 마주친 두 녀석.
싸우려는 의사는 없어보였고, 그저 서로 마주한 채 한참이나
으냐우웅거리고만 있었다.
뭐지? 이 시추에이션은...
그랬다. 삼색이는 발정이 난 듯했다.
발정이 난 삼색이 앞에 갑자기 수컷 고양이 한 마리가 올라오자
녀석은 놀라서 꼬리와 털을 곧추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덩달이를 아래 위로 살피며 간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야 그렇다고 내려가기냐. 수컷은 다 똑같애. 암컷이 먼저 관심 보이면 우습게 안다니까..."
반면에 덩달이는 싸울 의사는 물론 짝짓기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녀석은 오로지 내게 사료만 얻어먹으면 된다는 듯
삼색이보다는 혹시 내가 어디로 가지 않을까 흘끔거렸다.
결국 덩달이는 언덕에서 한발한발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혹시 모르는 기습공격에 대비해 삼색이의 동태를 유심히 살피며
녀석은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니가 알긴 뭘 알어. 내 속이 비어서 흙이라도 퍼먹고 싶은 심정을 니가 아냐?"
그리고 드디어 내 앞에 당도하자
삼색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 묘한 상황에서도 녀석은 밭고랑에 드러누워 발라당을 하는 거였다.
덩달이가 내려가버리자 삼색이도 살금살금 아래로 내려왔다.
여전히 꼬리털을 세우고 이상한 울음을 울고 있었다.
덩달이는 난처하다는 듯 연신 내 눈치를 살폈다.
"야, 내가 창피해?"
이쯤에서 내가 자리를 비켜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둘이 치고 박고 싸우든
사랑을 나누든 둘이 알아서 할 일이다.
공연히 고양이 싸움에 끼어들어봤자 손등만 터진다.
내려놓은 사료도 혼자 먹든 둘이 먹든 알아서 하라고
나는 서둘러 자리를 피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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